극장가에 이변이 일어났다. 국내에 어마어마한 팬덤을 거느린 마블의 대표 프랜차이즈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감독 타이카 와이티티)가 개봉 일주일 만에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은 것이다. ‘토르: 러브 앤 썬더’를 꺾은 건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감독 조셉 코신스키). 개봉한 지 보름을 훌쩍 넘은 영화가 최신작을 밀어낸 셈이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역시 차근차근 관객을 모으며 개봉 1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탑건: 매버릭’과 ‘헤어질 결심’의 재도약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비결은 영화계 새로운 성공 열쇠로 떠오른 ‘n차 관람객’에 있다.
n차 관람객은 같은 영화를 여러 번(n번) 관람하는 관객을 뜻한다. 말 그대로다. 영화를 다회 관람하며 입소문을 이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중에서는 ‘탑건: 매버릭’과 ‘헤어질 결심’이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CGV에 따르면, 개봉 후 일주일간 ‘탑건: 매버릭’을 2회 이상 관람한 n차 관람객 비중은 전체 관객 중 4.1%에 달했다. 일반 영화의 개봉 첫 주 n차 관람객 평균 비율인 2.4%를 크게 웃돈다. ‘헤어질 결심’은 3.3%였다. 메가박스가 멤버십 가입 관람객으로 산출한 자료에 따르면 ‘탑건: 매버릭’의 2회 이상 재관람률은 9%, ‘헤어질 결심’은 8%다. 롯데시네마는 개봉 시점부터 현재까지 다회 관람객 비중을 추산한 결과 ‘탑건: 매버릭’은 5.1%(평균 관람횟수 2.4회), ‘헤어질 결심’은 4.1%(평균 관람횟수 2.3회)로 집계됐다(멤버십 가입 유료관객 기준).
특별관과 함께 날아오른 ‘탑건: 매버릭’
‘탑건: 매버릭’은 항공 액션, ‘헤어질 결심’은 멜로를 다뤘다. 장르도 다른 두 영화는 어떻게 n차 관람객을 모았을까. ‘탑건: 매버릭’은 특별관이 입소문을 탔다. 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이하나(33)씨는 특별관에 매료돼 ‘탑건: 매버릭’을 2회 관람했다. 이씨는 “4D관 평이 좋아 도전해봤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었다”면서 “다른 포맷으로도 재관람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CGV가 제공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CGV에서 4DX나 스크린X 등 기술 특별관에서 ‘탑건: 매버릭’을 본 관객 비중은 39.4%에 달한다.
특별관이 입소문을 탄 만큼 관람 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탑건: 매버릭’은 ‘토르: 러브 앤 썬더’ 개봉 후 특별관을 내줬으나, ‘토르: 러브 앤 썬더’에 혹평이 이어지며 다시 특별관 상영을 시작했다. ‘탑건: 매버릭’의 홍보를 담당한 호호호비치 이채현 대표는 “극장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극강의 체험이 강점”이라면서 “훈련과 전투를 거치며 인물들이 세대 차를 극복, 소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중장년층과 젊은 층에게도 통하며 n차 관람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든 ‘헤어질 결심’
‘탑건: 매버릭’이 화려한 화면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면, ‘헤어질 결심’은 깊은 여운으로 관객들의 일상을 ‘붕괴’시켰다. 서울에 거주 중인 최나은(36)씨는 매 장면을 탐구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최씨는 “오랜만에 보는 영화다운 영화다. 여러 장치가 숨겨져 있어 이를 해석하는 재미가 크다”면서 “볼수록 서래와 해준의 감정이 더 공감되고 몰입감도 커진다. 재관람을 통해 작품의 여운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어 ‘n차’를 찍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 담긴 수많은 상징을 두고 관람객끼리 각자 해석을 내놓거나,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나 해설에서 직접 밝힌 연출 요소들이 퍼지며 자연스럽게 다회 관람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 작품이다. 곱씹으며 볼 수 있어 n차 관람하기에 딱”이라면서 “같은 장면을 계속 보는 개념이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롭게 느끼는 부분이 생긴다”며 n차 관람 열풍의 이유를 짚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