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대체 어떤 영화기에 이 배우들을 한 번에 모았을까. 제작 소식과 지난해 제74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진출 소식이 들릴 때부터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항공테러를 소재로 한 비행기 재난 영화라는 간단한 내용만 알려졌다. ‘비상선언’은 영화 ‘외계+인 1부’(감독 최동훈),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에 이어 올해 여름 세 번째 텐트폴 영화로 3일 개봉했다. 시사회 직후 영화에 대한 평이 크게 엇갈렸다. 쿠키뉴스 대중문화팀 기자들은 ‘비상선언’을 어떻게 봤는지 각자의 감상평을 남겼다.
화두는 뜨거운데 수습은 영…
하와이행 비행기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비상선언’의 큰 줄기는 처음부터 거대한 딜레마를 예상하게 한다. 국가는 바이러스 감염 환자 혹은 감염 의심 환자를 거둬야 하는가. 국민 대다수인 비감염자를 보호하려면 탑승객을 받지 않는 편이 낫다. 하지만 비행기 승객 역시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의 일부다. 국가와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대다수 국민의 안전을 위해 탑승객을 거부해야 하는가. 이 논쟁적인 질문 가운데서 ‘비상선언’은 안전하지만 실망스러운 선택을 한다. 재난에 가까운 비상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등장인물들의 눈물 바람 속에 희미해진다.
신파보다 더 나쁜 건 세월호 참사와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실제 벌어진 국가적 재난을 연상시키는 특정 장면이다. 한재림 감독은 “10년 전 영화를 기획했을 땐 실제 재난이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지만, ‘보호받지 못한 이들’과 ‘보호받지 않기로 한 이들’이 포개지는 순간이 달갑지 않다. 실제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남은 관객에게 영화의 후반 30분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될 수 있다. 다만 탑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마지막까지 제 몫을 해내는 승무원들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전염병의 시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민성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연착이 패착이 될 줄이야
의외로 느긋한 재난 영화다. 위기 상황이 쉼 없이 이어지는 90분 분량의 재난 영화 대신, 다양한 장르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는 140분 분량의 재난 영화로 완성했다. 기존 재난 영화에서 보지 못한 형식으로 만들고 싶은 야심, 재난 상황에 반응하는 개인과 집단, 국민에게 나름대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욕심이 모두 잘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비상선언’은 성공한 영화다. 국내 톱 배우들이 줄줄이 출연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영화가 추구하는 야심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관객이 기대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영화를 얼마나 즐길 수 있을지, 감독의 계몽적인 메시지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영화 제작부터 개봉 시기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시대를 관통하는 건 더 심각한 불안 요소다. 영화관에서 마스크를 쓰고 영화를 볼 관객들은 바이러스가 퍼져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극 중 인물들에게 느껴지는 이질감을 견뎌야 한다. 영화는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과 우왕좌왕하며 미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언제든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심각한 일처럼 그린다. 하지만 2022년 8월의 우리에겐 블랙코미디처럼 보일 뿐이다. 바이러스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메시지 역시 지나간 논의로 느껴져 힘이 빠진다. 만약 제때 도착하면 달랐을까. 지금 와서 가늠할 길이 없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야심이 과욕으로
야심이 가득하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활용하겠다는 야심, 재난 액션의 새 지평을 열겠다는 야심, 항공재난을 실감 나게 표현하겠다는 야심, 대한민국 현실을 반영하겠다는 야심…. 온갖 야심이 140분 동안 어지러이 얽힌다. 야심은 욕심으로 치닫고 결국 과욕으로 마무리된다.
극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인간적 면모와 이기심, 그로 인한 갈등과 극복은 재난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이다. ‘비상선언’은 재난 영화의 공식과 다르게 나아간다.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흐름이 이어진다. 극 중 인물들이 헤쳐가야 할 극한 상황도 여럿이다. 갈등에 다다르고 해결되는 과정은 이중삼중으로 꼬여있다. 감정을 소모하는 지점이 많아 피로감도 자연히 높아진다. 재난물에 항공액션, 국민갈등, 신파까지 어우러져 극의 방향성이 희미하다. 쟁쟁한 배우들에게 저마다 다른 서사가 주어지자 극이 느슨해진다. 보는 재미는 뛰어나다. 폐쇄된 공간에서 발생한 재난에 긴장감이 도드라진다.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는 연출도, 교통사고와 비행 사고를 회전 세트로 표현하는 연출도 뛰어나다. 다만 이야기가 엉성해 빼어난 연출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