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계의 다국적 공조가 활발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위기가 지나간 이후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를 굳히려면, 해외 기업 및 기구와 교류·협력을 촉진할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앞서 16일 국회에서 연설을 통해 글로벌 보건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가진 잠재력을 강조했다. 그는 보건의료 발전과 교육 기회 확산 및 빈곤퇴치를 목표로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하 게이츠 재단)’을 창립,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기금을 투자하고 있다.
게이츠 이사장은 “이제 다른 나라들은 자국 국민들을 위해 어떻게 미래를 번영시킬 수 있을지 고민할 때 한국에서 답을 찾고 있다”며 “원조 공여국으로서 한국은 다른 국가들의 발전을 돕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팬데믹을 통해 다자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며 “더욱 확대된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이 과학기술을 활용해 보다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독려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계는 세계화 국면을 맞았다. 올해 2월에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로 단독 선정됐다.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는 중·저소득 국가의 백신과 바이오의약품 자급률을 제고하기 위해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즉, 허브로 선정된 국가는 선진적인 제약바이오 인프라와 전문성을 갖췄음을 국제기구로부터 인정받는 셈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와 다국적 기업·기관의 협력도 증가했다.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교류가 활성화하면서다. 국산 코로나19 백신을 완성한 SK바이오사이언스는 게이츠 재단과 감염병혁신연합(CEPI)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 백신의 항원 기술은 미국 워싱턴대학 약학대 항원디자인연구소(IPD), 면역증강제 기술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협력했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의 시작점을 해외 기업이 찍기도 했다. 아직 완성단계는 아니지만, 미국 기업인 이노비오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은 지난 2020년 6월 국내 소재한 국제백신연구소(IVI)를 통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부터 임상 1상과 2상을 승인받았다. 식약처가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을 승인한 첫 사례였다.
글로벌 기업의 위탁생산(CMO)와 위탁개발생산(CDMO) 계약 수주도 지속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수주해 국내외에 공급했다. 올해는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도 추가 수주해 생산에 나섰다.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수주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기존 완제의약품(DP) 생산공정에서 나아가 mRNA원료 생산 설비를 마련해 영역을 확장했다.
다만 코로나19 백신·치료제에 의존한 해외 진출은 지속 가능성이 부족하다. 장기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국제 공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기술과 인프라 측면에서 국내 역량은 입증됐다. 신약 연구개발 과정을 이해하는 관점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남은 과제로 꼽혔다.
배시내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이사는 “글로벌 기업들은 유망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기업과 협업하기를 원한다”며 “국내 기업들도 혁신성을 인정받는 파이프라인을 확보한다면 파트너십의 기회는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한 이후 글로벌기업과 국내사 사이에 관점이 어긋나는 상황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배 이사는 “연구나 임상시험 등을 중단하는 것을 무조건 실패로 이해하는 (국내 기업들의) 관점은 개선해야 한다”며 “신약을 개발하려면 중단과 변경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들이 결국 신약 완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나아졌지만, 실패에 대한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의 시각 차이가 여전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