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특수 누린 외국계 제약사, 직원은 ‘토사구팽’

팬데믹 특수 누린 외국계 제약사, 직원은 ‘토사구팽’

기사승인 2022-09-08 06:00:17
한국화이자제약, GSK 홈페이지 갈무리.

해외에 본사를 둔 제약사들이 국내에서 돈을 벌어들인 뒤 근로자들을 방출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특수를 맞아 매출을 올린 기업들이 희망퇴직을 감행해 ‘토사구팽’ 행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한국화이자제약은 희망퇴직(ERP)을 실시했다. 화이자의 글로벌 본사는 현재 ‘볼드 무브3.3(Bold Move3.3)’이라는 내부지침 하에 전 세계 현지 법인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이에 한국화이자제약도 지난달 29일부터 이달까지 2주간 신청을 받았으며 8일 접수를 마감했다. ERP신청자를 접수하기에 앞서 한국화이자제약은 사내직원공모제 이른바 ‘잡포스팅’을 실시해 직원들로부터 이동 신청을 받아 직무를 조율·배정했다.

GSK도 조직 가지치기가 한참이다. 화이자와 달리, 글로벌 본사의 지침이 아닌 우리나라 법인 재량에 의한 감원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6일부터 ERP를 가동하고 희망퇴직자를 신청받았다. 접수 마감일은 지난달 31일이었으며, 희망퇴직 의사를 밝힌 직원들은 이달 30일을 기해 사직처리 된다. ERP실시 대상은 영업부서 직원들이었으며 임원을 제외한 27명의 직원이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두 기업은 직원들을 내보내야 할 경영상 시급성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팬데믹 기간 국내에서 승승장구했다. 화이자는 소수 기업 과점인 코로나19 백신 시장에서 ‘코미나티주’로 선두를 유지했다. 독점에 가까운 경구투여 치료제 시장에서도 ‘팍스로비드’를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긴급사용승인을 받고 국내 유통하고 있다. 

이른바 ‘백신명가’로 불리는 GSK도 팬데믹 특수를 누렸다. 대표 제품이 독감백신인 만큼,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환절기마다 국내외 독감백신 시장에서 활약했다. 또한 GSK는 백신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면역증강제 ‘어주번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해당 기술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다국적 기업들로부터 상당한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에도 어주번트가 활용됐다. 

두 기업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은 상당하다. 화이자는 지난해에만 국내에서 1조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지난해 11월 한국화이자제약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2월1일부터 2021년 11월30일까지 매출액은 1조6939억원에 달했다. 영업이익은 592억원을 기록해 흑자전환했다. 참고로 국내 제약사 가운데 매출 1위로 꼽히는 유한양행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6878억원으로 화이자보다 61억원 적다.

GSK는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 전기 수준으로 선방했다. 감사보고서에 집계된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매출액은 3044억4535만원이다. 영업이익은 107억원으로, 전기 영업이익 26억원과 비교하면 311% 증가했다.

매출 성장에 기여한 직원들을 역설적으로 방출시키는 형국이다. 해외에 본사를 둔 기업이 국내에서 이윤만 챙기고, 고용창출과 기업윤리는 배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들여 재무상태가 안정될수록 직원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회사가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더욱 과감한 근로자 방출 정책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은 글로벌 기업이 현지 국가 근로자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박창규 GSK 노동조합 위원장은 “글로벌 제약사들은 팬데믹 기간 전례 없는 성과를 올리고 있고, 특히 GSK는 지난해 전 세계 직원들을 대상으로 25%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며 “회사가 큰 돈을 벌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근로자가 얼마나 방출하기 쉽게 여겨졌으면 이처럼 일방적이고 모욕스럽게 퇴직을 부추기겠냐”고 토로했다.

회사가 사전에 근로자들과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두 회사의 노동조합 측에 따르면 한국화이자제약은 ERP 최소 60일 이전 근로자들에게 이를 설명하고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을 단체협약에 두고 있다. GSK의 단체협약은 사측의 사정으로 인한 감원은 노사가 합의 하에 진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박 위원장은 “ERP 실시에 앞서 회사는 타운홀 미팅을 개최하고 앞으로의 경영 방침, 품목 관리 계획과 함께 근로자 감원 예정을 발표했다”며 “근로자와 사전에 희망퇴직 절차, 시기, 감원 규모, 보상 등에 대해 전혀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회사가 정한 내용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정상인 한국화이자제약 노동조합 위원장도 “사측이 일방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노조가 입수한 자료와 정보로 추산해보면 회사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당초 50명을 내보낼 계획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후 직원들이 반발과 사회적 관심을 의식해 20명 내외로 규모를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가 노골적으로 특정 직무를 겨냥한 감원 전략을 편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주요 타겟은 영업직 근로자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재택 근무가 활성화하고, 제약사의 영업활동이 대면 방식에서 비대면·온라인 경로를 통한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됐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 영업부서는 규모를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최적의 부분인 셈이다.

정 위원장은 “잡포스팅 이후 어떤 직무에도 배정되지 않은 사람들을 남겨두고 희망퇴직을 접수받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상 내보낼 사람들을 정해두고 퇴직을 종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도 “영업부서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받으면서 그 어느때보다 저하된 보상 패키지를 제시하고 있고, ‘먼저 신청한 사람은 한달 임금 더 준다’는 기만적인 조건까지 내걸었다”며 날을 세웠다.

근로자와 회사의 견해가 평행선인 만큼, ERP를 둘러싼 노사 갈등은 계속해서 심화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주장과 달리 두 회사는 근로자와 충분히 소통하고 있으며, 기업 내 자치법규도 준수했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한국화이자제약 관계자는 “ERP추진 과정에서 국내법, 회사 규정, 자치법규 등을 모두 위반한 사실이 없었다”며 “앞으로도 근로자들과 성실히 소통하며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GSK 관계자는 “노조에서 사전협의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근거인 단체협약 제 21조의 ‘감원’은 본건과 같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퇴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희망퇴직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GSK가 우리나라에서만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답하기 적절하지 않은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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