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사회계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사형은 범죄 예방과 범죄자 교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사법살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10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사형제 폐지를 촉구했다. 인권위는 이날 20회를 맞은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기념해 송두환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고 “사형제의 범죄 억제와 예방 효과는 국내외에서 검증된 바 없는데도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사형제가 유지되고 있다”며 “사형제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처럼, 법원의 오판으로 생명권 박탈이라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낳을 수 있다”며 “사형은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인위적으로 생명권을 박탈하는 비인도적인 형벌”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 세계 144개국이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하거나 집행하지 않고 있고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55개국에 불과하다”며 “세계적 흐름과 사회적 요구에 발맞춰 우리도 사형제 폐지에 본격적으로 나설 때”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2005년 의견표명을 시작으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2018년에는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자유권 제2선택의정서’ 가입을 정부에 권고했다.
종교계도 입을 모아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불교인권위원회는 “사형제폐지는 단순히 사법살인을 멈추는 일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헌법이 인간존엄과 생명존중은 물론 주관적 세계를 벗어나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건설이라는 법정신을 새롭게 천명하는 일”이라며 “인권박탈은 물론 살인마저 서슴지 않았던 인류사에 대한 반성과, 이웃과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며 참회로서 실천을 다짐하는 바”라고 밝혔다.
사형제도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연석회의는 결의문을 내고 “범죄를 저지른 이는 엄중한 법의 심판으로 그 책임을 져야 함은 마땅하지만, 그 죄가 무겁다고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국민의 생명을 직접 빼앗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참혹한 범죄를 참혹한 형벌로 응징하는 일은 그 자체로 참혹한 일”이라며 “더 많은 이들을, 더 강력하게 처벌하자는 주장은 정의로운 말처럼 들리지만, 그 주장에는 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해 근본적 원인들을 찾아 해소하려는 노력과 합리적인 갈등해결 제도 마련 등의 사회적 책임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2월30일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후 24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부터 우리나라를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형제 존폐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앞서 2019년 10월10일 국회에서는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됐다. 이는 사형제 폐지를 위한 8번째 입법 시도였지만, 당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20년 6월에는 흉악범죄 등에 대한 사형집행을 의무로 강제하는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 사형 집행에 대한 찬반 여론이 충돌했다.
현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사형제 폐지 심리절차를 진행 중이다. 2019년 2월12일 사형제도를 규정한 형법 제41조 제1호 등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청구소송이 제기되면서다. 헌재의 사형제 폐지 심리는 지난 1996년, 2010년에 이어 현재가 세번째다. 1996년 당시에는 7대2, 2010년에는 5대4로 합헌이 결정됐다.
국제사회는 사형제 폐기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국제연합(UN)은 2007년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사형제도를 폐지하더라도 사회에 급작스럽고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사형제도의 유지가 테러 및 범죄를 예방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현재 UN회원 193개국 중 145개국이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모든 범죄에서 사형을 폐지한 109개국, 군형법 제외 일반범죄에서 폐지한 8개국, 우리나라와 같이 실질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28개국이 포함된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도 폐지를 회원국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