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간, 남지현의 ‘작은 아씨들’ [쿠키인터뷰]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간, 남지현의 ‘작은 아씨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10-12 06:00:38
배우 남지현. 매니지먼트 숲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쓴 정서경 작가는 극 중 오인경(남지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인경은 느리고 꾸준하게 전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나중에야 이 이야기를 밀고 온 게 오인경이란 걸 알게 됩니다.” 작가의 이 말은 ‘작은 아씨들’이 끝을 향해가며 비로소 명확해졌다. 인경의 고집스러운 정의감은 혹자에겐 지지를 얻었으나 누군가에겐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경을 연기한 배우 남지현에겐 강한 확신이 있었다. “인경이는 목표를 향해 앞뒤 가리지 않고 계속 전진하잖아요. 이런 사람도 있는 거죠.” 그의 믿음을 타고 ‘작은 아씨들’의 인경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지난 4일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난 남지현은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종영을 앞두고 만난 만큼 결말에 대해 함구했지만 “세 자매는 확실히 성장한다”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남지현이 연기한 인경은 정의를 쫓는 외골수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던 그는 원령가와 정란회의 실체를 목도하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애쓴다. 그 과정에서 인경은 언니 오인주(김고은)가 불법으로 20억을 취득한 걸 알고 힐난한다. 동생 오인혜(박지후)를 원령가로부터 보호하려다 그에게 모멸감을 안기기도 한다. 지나치게 바른 길만 고집하는 인경에게 남지현은 호기심이 불쑥 일었다. 

“1~4부 대본을 보고 인경이가 대단하지만 한편으론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하나의 목표를 좇으며 사는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었어요. 어떻게 연기해야 시청자분들을 설득하고 공감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죠. 작가님, 감독님과 처음 만났을 때도 인경 캐릭터가 가장 어려우셨대요. 양가적인 인물이라서요. 저를 왜 캐스팅했냐고 여쭤봤어요. 바른 쪽으로 갈 것 같은 느낌이 인경이와 잘 맞아 보였대요. 그때부터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생각하며 인경이를 이해하려 했어요.”

tvN ‘작은 아씨들’ 스틸컷

돈에게 비협조적인 사람. 남지현은 인경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경은 돈에 집착하지 않고 경계한다. 남지현은 인경을 들여다볼수록 많은 생각이 들었다. 확신을 준 건 정서경 작가와 김희원 감독이다. “무모하고 답답해 보여도 인경이의 선택이 사건을 이끌고 가요. 원령가를 무너뜨리는 세 자매의 이야기에서 인경은 중요한 존재예요. 작가님, 감독님과 이야기하며 방향성을 잡았어요.” 이야기 흐름을 파악하고 관계성을 이해하는 건 오롯이 남지현의 몫이었다.

“‘작은 아씨들’은 복잡해요. 자매마다 각각 사건이 전개되지만 점차 하나의 이야기로 뭉치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대본 전체를 읽고, 인경이 나오는 부분만 모아서 다시 읽곤 했어요. 전체 이야기는 이쯤이고, 나는 여기쯤 왔다고 확인했어요. 시청자분들은 다 아셔도 인경 입장에서 인주와 인혜가 말해주지 않아 모르는 상황이 있으니까요. 인경이는 단번에 파악되지 않던 캐릭터예요. 정제된 모습에서 뜨거운 열정이 튀어나오잖아요. 인주에겐 거침없고 고모할머니 혜석(김미숙)에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죠. 표정에 차이를 두려고 고심했어요. 기자인 만큼 발음에도 신경 썼죠.”

‘작은 아씨들’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시놉시스가 없었다. 독특한 지문도 눈에 띄었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주로 해온 정서경 작가의 개성이 담뿍 담긴 결과물이다. “‘우리는 그런 공감적인 인경의 모습을 처음 본다’라는 지문이 있었어요. 지문에 ‘우리’가 나온 걸 처음 봤거든요. 너무 생소해서 사람 이름으로 착각할 정도였어요. 일반적인 드라마 대본보단 소설책이나 연극 대본 같았어요.” 대본에 충실히 접근하며 ‘작은 아씨들’의 세계관에 빠졌다. 주위로부터 인경과 똑 닮았다는 반응도 여럿 접했단다.

tvN ‘작은 아씨들’ 스틸컷

“대학 동기가 인경이랑 제가 너무 닮았다는 거예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의견을 표현하는 모습이 똑같대요. 인경이는 잔꾀 없이 모든 단계를 밟고 원하는 걸 얻어내는 인물이잖아요. 생각이 많아 일을 시작하기까진 오래 걸리지만, 일단 행동에 나서면 원하는 바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기분이 좋았죠. 감독님과 작가님 모두 그런 부분이 인경이의 가장 좋은 점이라고 해주셨거든요.”

“기다려 보시죠. 전 느리지만 확실하게 일을 하는 타입이에요.” 10회 말미 박재상(엄기준)에게 내뱉는 인경의 말은 남지현의 인생관과도 맞닿아 있다. 아역 생활을 거쳐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하며 그는 ‘천천히 한 발씩 앞으로’를 신조로 삼았다. 남지현은, 꾸준히 멀리 나아가는 배우를 꿈꾼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걸어가면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해요. 천천히 쌓은 경험은 단단하니까요. 어느 지점에 올라서도 불안감 없이 성취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죠. 저 또한 그래요. 후회 없이 천천히 왔거든요. 그러면서 ‘작은 아씨들’이라는 최고의 선물도 받았잖아요. 촬영을 진행할수록 내면에서 차오르는 뭔가를 느낀 순간이었어요. 연기는 늘 도전의 연속이에요. 그걸 해내는 건 제 몫이고요. 앞으로도 천천히 잘 해내고 싶어요. 저답게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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