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으면서도 크고, 낮으면서도 높은 이야기. 정서경 작가는 tvN ‘작은 아씨들’을 이렇게 정의했다. 작가는 자매들의 삶 아래에 사회의 거대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배치했다.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던 자매들은 각자 방식대로 나아가며 성장한다. 700억의 향방이 정해진 극 말미에서 세 자매는 커다랗게 성장해 높은 곳에 선다. 돈과 욕망을 소재로 자매들의 성장을 극적으로 그려낸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집필한 정서경 작가와 지난 18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저한텐 시청률 3~5% 정도가 적당한데 흥행 감독님과 함께 하니 두 자릿수는 찍어야 될 것 같더라고요.” 쾌활히 웃는 정서경 작가의 얼굴이 후련해 보였다. ‘작은 아씨들’은 6.4%로 첫 발을 떼 11.1%로 막을 내렸다(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집계). 3%로 시작해 5%로 끝났던 정 작가의 전작 ‘마더’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인터뷰 동안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말을 줄곧 하던 정 작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작은 아씨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를 쓰고 싶은 대로 쓰는 편이에요. 사람들의 반응이나 조언을 듣고 이런 것들을 놓쳤다고 깨닫곤 하죠. 이번에도 그랬어요. 시청자 눈높이에 맞는 드라마를 쓰려했는데 방송을 보니 또 마음대로 썼더라고요. 하하. 인기작을 연출했던 김희원 감독님과 함께 하니 시청률도 더 잘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부담됐어요. 감독님이 신경 쓰지 말라 해도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요. 좋은 반응이 있어도 불편하다는 댓글이 눈에 더 들어오고… 그래도 재미있다는 반응을 접해서 조금은 기뻐하고 있어요. 다음 작품은 좀 더 다르게 쓰고 싶단 생각도 들었어요.”
‘작은 아씨들’의 동력은 돈이다. 가난한 세 자매로 시작한 이야기는 700억원을 타고 원령가로 이어진다. 정 작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돈 얘기를 하더라. 주식, 비트코인, 부동산으로 인사를 하는 게 낯설었다”면서 “변화한 사회 분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돈이 의식주의 풍요를 의미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생존과 직결한다. 가난한 세 자매의 이야기는 여기서 출발했다.
“자기 집을 가질 수 없다는 젊은 세대의 불안감에 공감하고 싶었어요. 인주가 영혼이 살 집을 찾고 싶어 하던 것도 이런 생각에서 나온 대사예요. 세 자매의 부모님들은 의자 뺏기 게임에서 계속 탈락한 사람들이에요. 계층 상승 사다리를 타지 못하고 IMF, 카드 대란 등을 거치며 서서히 몰락한 거죠. 거기서부터 자매의 삶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자매마다 가난을 다르게 인식해요. 인주(김고은)에게 가난은 감정적인 슬픔과 좌절이지만, 인경(남지현)에겐 지고 싶지 않은 대상이죠.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가난에 맞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어 하거든요. 인혜(박지후)는 가난을 초월하고 싶어 해요. 스스로를 설명할 때 가난과 거리를 두려 하고요.”
자매들이 가난을 대하는 태도만큼, 700억원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다르다. 돈을 멀리하는 인경은 700억원을 탐내는 인주를 타박하고, 인혜는 자신의 재주를 바탕으로 다른 인생을 살고자 한다. 언니들의 사랑을 버거워하던 인혜는 효린(전재은)과 도피하며 직접 삶을 설계한다. 정 작가는 “인혜의 모든 행동은 언니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믿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인주는 가족을 중심에 둔 관계지향적인 사람이다. 이런 인주에게 인경, 인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극 말미 인혜가 인주에게 ‘가족 모두의 아파트가 아닌 언니만의 아파트를 사’라고 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인주와 도일(위하준)의 관계 역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정 작가는 도일과 인주의 이야기가 나오자 김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이렇게까지 둘 사이 감정적인 교류가 발전한 건 감독님 덕분이에요. 감독님이 매 회 도일과 인주의 관계를 주목해주셨어요. 기대에 부응하고 싶더라고요. 하하. 도일이와 인주가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 분들이 많은 걸 알아요. 저 또한 둘 사이를 응원하지만, 그 시점의 인주는 삶을 재건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상의 13화가 있다면 둘이 만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푸른 난초는 ‘작은 아씨들’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잇는 고리다. “푸른 난초 이야기를 풀어갈 때마다 제작사인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엄청난 반응을 보여줬다”면서 “정란회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현실과 환상, 극 중 사건을 풀어가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현실과 환상 사이 경계를 그려내는 것엔 김 감독의 유려한 연출과 류성희 미술감독이 구현한 세트 미술의 도움이 컸다. “기대보다 뛰어난 결과물이 나왔어요. 다음엔 미술과 연출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악역 원상아와 박재상을 연기한 엄지원, 엄기준의 존재감 역시 정 작가에게 큰 힘이 됐다. 정 작가는 “시청자께 만족을 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정해진 길로 잘 나아갔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작은 아씨들’은 제가 편안하게 쓸 수 있는 여자 주인공과 여자 악역의 이야기로 가득 채운 드라마예요. 700억원을 따라가다 결국 얻어내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어요. 정서적으로 알맞진 않더라도 상상할 여지가 많은 결말을 생각했죠. 인주는 이 돈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함께해요. 인주가 극 초반 20억원을 얻었을 땐 생활용품이나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는 것에 그치지만, 12회에선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요. ‘작은 아씨들’의 마지막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세 자매의 전환점이기도 한 거예요. 많은 분들이 자매들의 앞날을 다양하게 상상해주길 바라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