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날카롭다. 눈 내리는 한겨울 깊은 산속 별장에서 변호사와 피의자 단 둘이 대화를 나눈다. 밀실 살인 사건이 등장하고, 거짓과 비밀이 숨어 있는 대화가 오간다. 극 중 차가운 공기가 스크린을 타고 전해진다. 시간이 갈수록 날카로운 칼로 베듯 사건의 핵심을 하나씩 드러낸다.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정신을 바짝 집중하게 한다.
영화 ‘자백’(감독 윤종석)은 성공한 사업가인 유민호(소지섭)가 누명을 벗기 위해 승률 100% 변호사 양신애(김윤진) 앞에서 모든 걸 자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두 사람은 문이 잠긴 호텔에서 김세희(나나)가 사망한 사건에서 용의자 유민호의 의혹을 벗기기 위해 앞뒤를 맞춰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한다. 문제는 두 사람 역시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 진실과 거짓을 오간다는 점. 팽팽한 심리전 속에 새로운 비밀이 드러나며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다.
한 편의 정통 추리 소설 같은 영화다. 대단한 야심을 품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의뢰인과 변호사이 나누는 대화로 전개되는 영화인만큼, 과거 사건을 되짚으며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 숨겨진 이야기를 표면으로 드러내는 방식과 속도가 인상적이다. 답답하고 제한된 겨울 산장에서 기억을 매개로 해 탁 트인 넓은 공간으로 나아간다. 좁은 공간과 넓은 공간을 오가고, 다양한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서술 방식은 시원한 해방감을 준다. 일부러 뒤로 숨기지 않고 맨 앞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속도감도 적절하다. 두 가지 사건, 두 인물의 대화가 지닌 밀도가 높아 러닝 타임 1시간45분을 꽉 채우는 느낌이다.
추리 장르답게 중반부 이후 일어나는 반전이 이야기 흐름을 뒤집는다. 어느 순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바뀐다. 반전 이전과 이후 긴장감의 색깔이 다르다. 비슷한 장르물에 익숙한 관객이면 영화 초반부터 예상할 수 있는 쉬운 반전이다. ‘자백’은 반전을 애써 꼭꼭 숨기느라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반전은 메인 요리가 아닌 양념으로 활용해 이야기 자체가 가진 매력으로 정면 승부한다. 다음 이야기를 자꾸 궁금하게 하는 힘이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간다.
인물의 매력이 시선을 붙잡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대화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배우에 대한 신뢰가 큰 역할을 한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10여 차례 이상 리딩을 진행,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정, 몸짓, 목소리 톤까지 파악해 시나리오와 콘티에 반영한 것이 영화의 안정감을 높였다. 2017년 개봉한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를 원작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다. 2019년 촬영을 마쳤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영향으로 개봉이 미뤄졌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