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디지털 혁신의료기기의 시장진입 속도가 빨라진다. 기존에는 없던 제도가 생긴 덕분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다.
지난달 31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통합 심사·평가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제도의 취지는 기존 혁신의료기기 지정→요양급여대상·비급여대상여부 확인→혁신의료기술평가 등 순차적으로 진행되던 절차를 해당부처와 기관이 한 번에 통합 심사해 시장진입까지의 기간을 단축함으로써 제품화를 용이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진입 기간도 대폭 단축(390일→80일)될 것으로 기대했다.
기존기술로 분류돼 별도의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던 의료기기 역시 상당수가 혁신의료기술평가 대상으로 전환돼 임상 현장에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혁신의료기기의 요양급여, 비급여 적용에 따라 시장 진입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요양급여·비급여로 시장 진입 창구 열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 업계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비급여라도 인정받았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기존 의료기기와 다르게 ‘새로운’ 분류로 구분되는 AI 의료기기는 같은 AI 기반으로 개발되더라도 기존에 제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혁신으로 분류되기 어려웠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인정받은 AI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총 110개에 달하지만,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된 제품은 뷰노 3제품, 루닛 2제품, 휴런·코어라인소프트·메디웨일·메디컬에이아이·라온메디·제이엘케이 각각 1제품 뿐이다(11월4일 기준). 2019년부터 4년간 지정된 혁신의료기기는 총 19개 제품이다.
또한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받더라도 신기술인만큼 유효성 입증을 입증하기 어려워 심평원에서 인정받기 힘들었다. 비급여로도 인정받지 못해 병원 진입 문턱이 높았다. 실제로 AI 소프트웨어 혁신의료기기 중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아 비급여를 따낸 제품은 뷰노 제품이 유일하다.
업계 관계자A는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현실적으로 현장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특히 혁신성 인정 범위가 확대된 것은 업계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그 동안 기존 기술로 판단되던 AI, 디지털 의료기기들이 혁신의료기술평가 대상으로 확대되면서 시장 진입에 가능성을 열어줬다”고 언급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이번 제도 개선 중 가장 눈여겨 볼 것은 혁신의료기기로 지정시 비급여 혹은 요양급여가 인정된다는 부분이다. 혁신의료기기는 이전에 없던 기술인만큼 근거를 창출해야지만 급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기는데, 기존에는 비급여로도 인정받지 못해 시장 진입이 어려웠다”며 “이번 기회로 시장 진입을 할 수 있다는데 업계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판매가 어느 정도 될지, 병원에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활용될지, 재평가 시 어떤 기준으로 급여 전환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제야 진입 가능…아직도 ‘상용화’까지는 어렵다
업계는 이번 제도개선에 대해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실제 업계가 매년 목소리를 내는 부분은 임상 현장에서의 ‘활용(상용화)’이지만, 여전히 해당 부분에 대한 지원은 미비하기 때문이다.
혁신의료기기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더라도 효능성·안전성 평가에만 집중해 혁신의료기술이 들어가는 모든 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하는 등 시장에서 버티기 쉽지 않은 면이 있다. 즉 제품화를 성공했더라도 상용화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업계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미국의 NTAP(New Technology Add-on Payment) 제도 등을 예시로 들었다. 해당 제도는 혁신의료기기 금액의 일정 부분을 급여 방식으로 정부에서 지원하고, 업계에게 입증 유예기간을 둬 임상적 근거를 모을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업계뿐 아니라 병원 측면에서도 기기를 활용하고 가치를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며, 시장 진입부터 유지까지 이어줄 수 있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이번 방안은 혁신의료기기를 준비하는 제품 개발 단계 업체에게는 좋은 제도지만,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업체에겐 구체적인 방향이 없어 아쉽다. 추가 방침이 있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신의료기술평가 유예기술 혹은 혁신의료기술은 관계당국의 행정적인 감시와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시장에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한 지원 및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때”라며 “새로운 혁신의료기기가 나올 때마다 제도를 수정하고 세부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는, 제외국의 신의료기술 제도처럼 효능과 안전성 등에 대해 큰 틀의 평가 기준을 정하고 구체적인 시행은 어느 정도 업계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또한 혁신의료기기 지정 대상을 확대하되, 실질적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혁신의료기기 통합 심사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정식 등재는 4~6년 뒤에 이뤄진다. 혁신의료기술평가 트랙을 밟은 후 3~5년 간 사용 후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하고 신의료기술평가 기간에서 250일, 이를 통과한 후 심평원에서 100일 간 급여 심사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C는 “혁신의료기기 심사 과정은 빨라졌지만 준비해야 하는 제반사항들은 여전히 복잡해 인정받기 쉽지 않다. 혁신의료기기 지정 후, 급여 또는 비급여 품목으로 지정 되기까지 심사 기준이나 소요 시간 등이 완화됐으면 한다”며 “게다가 혁신의료기기 지정 후 시범구매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을 준비하는 시간에 비해 지원금은 넉넉지 않다. 기업이 시장 진입 후 개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차원에서 재정적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