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플랫폼 업계의 독과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율 규제로 대응이 어려울 경우 법제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집단 부당내부거래 행위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내세웠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 깊이 살펴보고 엄정한 법집행과 함께 관련 제도 개선을 병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디지털경제가 혁신이 필요한 부분이고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또 국민 생활에 굉장히 밀접하게 관련이 돼 있다”면서 “그 혁신을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 기반의 확립이라는 것이 꼭 전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이번 카카오 사태를 들며 “경쟁압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독점 플랫폼이 혁신 노력과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플랫폼의 창의와 혁신은 최대한 존중하되 독점력 남용으로 인한 역기능은 효과적으로 시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온라인 플랫폼은 다면성, 간접 네트워크 효과 등 특수성이 있어 기존의 불공정행위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한 위원장은 “공정거래법 또는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을 통해 독과점남용행위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집행을 해 왔다”면서 “자율규제는 정부가 시장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이냐에 관한 이슈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율규제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법제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도 공식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위원장은 “원자재 가격 급등이 계속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굉장히 크게 가중되고 있다”면서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법제화를 추진할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초 공정위는 납품단가 연동제 자율규제를 추진하면서 성과를 지켜본 뒤 법제화를 논의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제도 도입으로 선회했다.
대기업집단 제도에 대해서는 부당내부거래 행위는 엄정 대응하고 대기업 집단 제도는 합리화하는 방안을 병행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플랫폼 기업집단이 금융회사를 통해 주력 계열회사에 의결권을 행사한 사건도 연내 심의할 예정이다. 경영권 편법 승계, 총수일가 회사 지원, 경쟁상 우위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한 부당내부거래 사건도 지속적으로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한 위원장은 조직개편 방안에 대한 소신도 전했다. 이번 조직개편은 무엇보다 공정위 법 집행의 공정성과 효율성, 전문성을 제고하는데 방점을 뒀다는 입장이다.
한 위원장은 “조사와 정책을 분리하는데 조사는 조사대로, 정책은 정책대로 전문성이 필요하다. 각각 동시에 하는 것보다 둘을 분리해 전념하게 하는 게 전문성이 더 강화될 수 있다”면서 “인력과 관련해선 경제분석 인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조직개편의 직책을 신설하는 부분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이 없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조직개편 문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라며 “조사와 정책이 분리되고 전문화와 효율성이 훨씬 높아지면 그 결과로 심사보고서의 퀄리티가 더 향상되고 사건 처리 시간이 훨씬 단축될 것”이라며 “내부에서 많은 논의를 거쳐 깊은 고민을 하고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적극적으로 추진해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한 법집행시스템도 개선한다. 그간 별도로 운영하던 법집행시스템 개선 TF와 조직선진화추진단을 법집행 혁신·조직개편 TF(단장 사무처장)로 통합할 방침이다. 통합TF 내 사건기록물관리개선팀을 별도로 신설함으로써 사건기록물관리 개선방안을 보다 세밀하게 검토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의 글로벌 기업결합(M&A)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M&A 심사를 전담할 국제기업결합과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이날 주요 정책과제로 △온라인 플랫폼 등 공정한 경쟁기반 확립 △대기업집단 제도의 합리적 운영 △디지털경제 시대 소비자 권익보호 △중소기업의 공정한 거래기반 강화 △법집행 혁신·조직개편 및 정책 네트워크 구축 등을 제시했다.
한 위원장은 “시장경제에서 민간의 자율과 창의가 최대한 발현되려면 공정한 경쟁기반이 전제돼야 하고, 이러한 공정한 경쟁기반의 구축, 유지, 발전은 공정위의 기본적인 소임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공정위는 모든 기업들이 공정경쟁의 기반 내에서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들이 시장경제의 기본 규칙을 준수토록 하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시장에서의 반칙 행위는 엄중히 제재할 것”이라며 “법집행이 공정하고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들이 납득하고 신뢰할 수 있는 법집행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