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빅테크의 금융사업 진출에 높은 경계감을 드러내는 금융권을 달래고 나섰다. 규제 차이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금융권의 의견을 반영해 사업 방향을 선회하고 규제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최근 금융권의 자금시장 안정 노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14일 핀테크 플랫폼을 통해 대출을 갈아탈 수 있게 도와주는 ‘대환대출 플랫폼’을 금융회사 별로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출자들은 은행간 대출을 갈아타기 위해 오프라인 지점을 직접 방문해야 했다. 이는 금리인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대환대출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에 당국은 대환대출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원스톱 플랫폼 구축을 진행해 왔다.
대환대출 플랫폼 구축은 2020년부터 논의됐지만 은행권의 반대로 매번 도입이 무산됐다. 특히 은행권은 빅테크 플랫폼에 은행의 대출 상품을 선보이는 것을 크게 반발했다. 자칫 빅테크 플랫폼에 은행이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존 도입 방안은 은행이 빅테크의 들러리가 되는 구조 였다”며 “은행은 빅테크 플랫폼에 물품을 공급하는 공급자 역할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금융당국은 금융사별로 대환대출 플랫폼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은행들이 빅테크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대환대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도 플랫폼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면서 일단 불만이 가라앉은 상태”라면서 “추가 협의를 진행하기로 한 만큼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단계”라고 밝혔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같은날 금산분리 규제 개선 방안을 내년 초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금산분리 규제는 금융과 비금융 상호간 소유-지배를 제한하고, 금융자본의 비금융업 영위를 금지하는 제도다. 금융권에서는 빅테크와 금융권의 불공정한 경쟁이 금산분리 규제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주장해 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의 디지털화, ‘빅블러’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과 비금융의 융합을 통해 새롭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금산분리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금융혁신은 금융시장 안정과 함께 우리 금융산업의 미래를 위한 수레의 두 바퀴이다. 정부는 당면한 시장안정 노력이 시급하지만, 금융혁신 노력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가 할 수 있는 비금융 업무의 범위를 법령에 규정하는 과정에서 현행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추가 보완하는 방식부터 네거티브 전환과 함께 위험총량을 규제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나갈 방침이다.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의견을 반영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최근 자금시장 불안에 금융권이 안정판 역할을 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5대 금융지주의 경우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95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5대 금융지주 등 은행권을 중심으로 기존 금융사들이 이번 자금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면서 당국의 시각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며 “당국도 기존 금융사들에게 사회적 역할을 강요만 할 수 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에게도 명분이 주어진 만큼 좀 더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