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기대 이상! [쿡리뷰]

‘올빼미’, 기대 이상! [쿡리뷰]

기사승인 2022-11-16 06:00:02
영화 ‘올빼미’ 포스터. NEW

병자호란의 아픔이 가시지 않은 조선,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는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간다. 경수는 아픈 동생이 애처롭다. 약값을 벌기 위해 궁궐에 침의로 발을 들인 그는 어느 날, 소현세자(김성철)의 죽음을 목도한다. 경수는 세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그는 무엇을 봤을까.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는 신선한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의 빈 공간에 그럴싸한 허구를 가미했다. 팩션 사극이지만 실제 조선사를 충실히 따른다. 병자호란 이후 극심한 불안을 겪는 인조(유해진)와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 ‘올빼미’는 기록에 의거한 역사적 사실을 타고 경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간다.

‘올빼미’가 뻔하지 않게 긴장감을 이끄는 건 주맹증 설정 덕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야맹증의 반대 개념이다. 밝은 낮엔 앞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밤엔 시력을 회복한다. 안태진 감독은 주맹증에 걸린 주인공이 무언가를 목격하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조선왕조실록에서 소현세자의 죽음을 두고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것 같다’고 기록한 내용을 더해 살을 붙였다. 주맹증은 널리 알려진 역사와 만나 스릴감을 키우는 동력으로 기능한다. 이를 표현하는 연출력도 눈에 띈다. 시각과 촉각을 구현한 여러 촬영 기법과 광학적인 효과를 극대화한 조명으로 주맹증을 겪는 경수의 시야를 실감 나게 표현한다. 고증에 충실한 궁궐 세트와 복식도 돋보인다. 대중이 사극 장르에 기대하는 우아함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영상미 속에 피어나는 서스펜스가 압권이다.

영화 ‘올빼미’ 스틸컷. NEW

감정을 휘어잡는 힘이 대단하다. 긴장감이 가득한 이야기 가운데 웃을 틈을 균형감 있게 배치했다. 클리셰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주연부터 감초 캐릭터까지, 모든 인물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이 간다. 서사를 켜켜이 쌓아가며 각 인물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경수의 모습은 평범한 우리네와 닮아있다. 누구나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아야 하는 순간이 있지 않나. 그럼에도 우리는 진실과 마주할 용기 또한 품고 있다. ‘올빼미’는 사극이면서도 현대성을 동시에 띤 영화다.

처음으로 왕 역할에 도전한 유해진은 인상적이다. 여태까지 보지 못한 왕을 연기했다. 근엄하거나 광기 어린 기존 왕의 이미지를 넘어 불안함과 지질함, 욕망, 열등감 등 소인배의 모습까지 담아낸다. 표정 근육까지 세밀하게 활용한 연기가 일품이다. 류준열은 맹인과 주맹증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한다.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소현세자를 연기한 김성철은 짧은 분량에도 기억에 남는다. 그가 표현한 세자의 성품은 극 중 경수의 결정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김성철이 고르게 다진 토대 덕에 관객은 경수의 행보를 폭넓게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다. 어의 이형익을 연기한 최무성과 영의정 최대감을 연기한 조성하는 극에 무게감을 더한다. 만식 역 박명훈은 팽팽한 전개에 쉴 곳을 마련한다.

전반적인 만듦새가 좋다. 사극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작품이다. 주맹증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맛을 냈다. 실록을 고스란히 고증한 부분에선 섬뜩함이 몰려온다. 오랜만에 볼 만한 팩션 사극이 나왔다. 연말 극장가에 나타난 기대 이상 복병이다. 오는 23일 개봉. 러닝타임 118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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