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탕! 실탄 발사되는 소리가 적막을 뚫고 울린다. 특수부대 훈련 현장이 아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표적에 총구를 겨누는 주인공은 코미디언 김민경. 그는 지난해 6월 웹예능 ‘오늘부터 운동뚱’(이하 운동뚱) 촬영차 대한실용사격연맹 사격장을 찾았다가 재능을 또 발견했다. 그가 총탄을 쏠 때마다 주변에선 “기가 막히다” “깜짝 놀랐다”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처음 맛본 손맛이 짜릿했던 걸까. 김민경은 제작진과 연맹 관계자들의 제안으로 레벨4 자격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내친김에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도전해 여성부 최종 2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운동인 김민경의 활약이 코르셋에 질식하던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주고 있다. 여성의 신체를 관음 대상에서 활동 주체로 바로 세우면서다. 여성들의 몸은 오랜 시간 사회적 미의 기준에 따라 관찰되고 평가당해왔다. ‘쇄골 미녀’ ‘개미허리’ ‘꿀벅지’ ‘애플 힙’ 등 유행하는 몸에 따라 신체를 품평하는 신조어도 달라졌다. 여성의 운동은 아름다운 신체를 가꾸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여기에 자기관리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날씬한 몸은 건강한 몸, 뚱뚱한 몸은 게으른 몸으로 받아들여졌다.
김민경은 이런 공식에 씩씩하게 균열을 낸다. 2년 전 시작된 ‘운동뚱’ 첫 프로젝트. 양치승 관장을 만난 김민경은 레그프레스가 허벅지를 얼마나 가늘게 만드는지, 데드리프트를 하면 납작한 배를 가질 수 있는지 따위를 묻지 않았다. 대신 “무게를 늘리는 게 재밌다”며 운동의 맛을 곱씹고, 담당 프로듀서와 대결에서 이기겠다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운동뚱’ 속 여성의 몸은 타인의 시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외관에 따라 등급 매겨지지도 않는다. 대신 어느 부위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만 집중한다.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규정하는 좁은 틀을 벗어나 ‘내 몸의 주인은 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감각할 때, 김민경과 ‘운동뚱’이 주는 쾌감은 폭발적으로 커진다.
2008년 데뷔한 김민경은 과체중을 열등하다고 여기던 야만의 시대를 몸소 겪었다. 2009년 방영한 KBS2 ‘개그콘서트’ 속 코너 ‘그냥 내비 둬’. 애교 많은 여자친구를 연기하는 김민경에게 “일찍 일어나는 새가 얘한테 먹혔다” “쟤가 그 유명한 전설의 푸드 파이터”라고 놀리는 게 이 코너 웃음 포인트였다. 폭력적 개그라는 비판 속에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이 문 닫은 뒤에도 신체를 비하하는 코미디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13일 방송된 tvN ‘코미디 빅리그’의 ‘결혼해두목’ 코너에서 코미디언 이국주가 하늘색 운동복을 입고 등장하자 “생수통” “물탱크”라는 조롱이 나왔다. 뚱뚱한 여성은 비정상적 존재라는 통념이 남아있는 영향이다.
하지만 이런 적폐가 여성들의 운동을, 그리고 여성 운동을 멈추지는 못한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골 때리는 그녀들’과 시즌2로 막 내린 E채널 ‘노는 언니’는 오락적 재미를 줬을 뿐 아니라, 여성 신체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다양한 체형의 신체를 가치 평가 없이 받아들이고 운동 행위 자체에 집중하면서다. MBC ‘마녀들’, tvN ‘나는 살아있다’ 등 여성들의 신체 능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잇달아 제작됐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김민경은 여성의 신체를 향한 시선을 바꿔 전 국민에게 응원받았다”라면서 “김민경 외에도 최근 KBS2 ‘홍김동전’에서 활약한 이수지 등 그간 뚱뚱한 캐릭터로만 조명받던 코미디언들이 자기 재능을 마음껏 펼칠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