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매운 음식을 먹어도 입이 쓰리거나 배가 아픈 사람들이 있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의 유행세에 합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맵찔이’로 불리며 조롱과 괄시를 받는다.
유독 매운 맛에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혓바닥이 나약한 것일까? 음주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매운 맛도 계속 먹다보면 강인한 입맛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매운 맛을 안전하게 즐기기 위한 상식을 알아봤다. 서희선 가천대학교 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이혜준 중앙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주량이 느는 것처럼, 매운 맛도 계속 먹으면 잘 먹게 되나요?
서 교수: 아닙니다. 계속 매울 것입니다. 술은 많이 먹으면 이를 소화시키는 효소 분비량에도 변화가 생겨, 주량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운 맛은 통각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반응에 차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매운 음식을 계속 먹어서 더 잘 먹게 되었다면, 이는 맞은 곳을 계속 맞아서 통증에 무뎌진 것과 같습니다.
이 교수: 문제는 입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무뎌졌다고 해도, 몸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입은 괜찮아도 위장은 과도한 자극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위산이 분비되고, 위점막도 자극을 받습니다. 위와 장 내 환경 변화가 잦은 복통과 설사를 일으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매운 맛에 민감한 정도의 차이, 어떤 요인에서 생기나요?
이 교수: 사람마다 통증 감수성이 매우 다릅니다. 감각신경 말단에는 통증에 반응하는 통증수용체가 있는데, 그 수는 선천적으로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요. 수용체의 수가 많아서 활성도가 높은 사람은 작은 통증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수용체 수가 적은 사람은 통증에 상대적으로 무딥니다. 매운 맛을 잘 먹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할 수 있어요. 물론, 통증에 무디다고 위장까지 강한 것은 아니에요. 통증수용체의 수가 많든, 적든 캡사이신으로 인한 위장 자극은 동일하게 받습니다.
‘마라맛’·‘핵불맛’ 극단적인 매운 맛의 유행, 괜찮을까요?
서 교수: 문제는 매운 맛 자체가 아니에요. ‘단·짠·맵’ 조합이 유행한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달고 짜면서 매운 맛을 내는 자극적인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지면,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맛을 내는 음식만 선호하게 됩니다. 최근 몇년 사이 시중에서 단·짠·맵 조합으로 인기를 얻은 떡볶이, 라면 등은 대부분 지방, 나트륨, 당류의 함량도 높기 마련입니다. 이런 음식을 자주 섭취하면 당연히 살이 찌고, 건강에 해로울 수밖에 없죠.
이 교수: 매운 맛 자체만 먹으면 괜찮을 수 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식사는 불가능합니다. 캡사이신이 지방세포 생성을 방지하고, 지방 분해를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는 다수 있는데요. 끼니마다 순수한 캡사이신만을 먹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겁니다. 매운 맛이 다른 다양한 맛과 조합을 이루면, 오히려 식욕을 돋우기 때문에 식사량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래도 참을 수 없는 매운 맛, 좋은 점은 없을까요?
이 교수: 매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캡사이신을 섭취하면 몸에서 열과 땀이 나는데요. 이는 자율신경계 교감신경이 활성화한다는 의미입니다. 교감신경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고 땀을 내는 등의 역할을 합니다. 활성화하면 대사가 활발해지고 뇌에서 엔돌핀과 세로토닌이라는 두가지 호르몬이 나오죠. 엔돌핀은 웃으면 나오는 호르몬인데, 진통과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있습니다. 세로토닌은 만족과 행복감을 느끼는 데 관여하는 호르몬입니다.
서 교수: 매운 맛으로 살을 뺀다는 민간요법도 의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많은 연구들이 매운 맛의 식욕 억제 효과를 검증하면서 캡사이신의 긍정적 효과에 주목했어요. 매운 맛으로 입을 자극하면, 포만감이 오래 지속되면서 2~3시간이 흐른 뒤에 식욕이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즉 다음 끼니에는 식사량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캡사이신의 효과라는 점에 주의해주세요. 매운 떡볶이나 마라탕을 먹으면 살이 찝니다.
그랬구나. 맵찔이는 조금 더 예민할 뿐, 나약하지 않다. 매운 맛이 위장에 주는 타격은 누구나 똑같다. 매운 맛은 스트레스 해소와 다이어트를 돕지만, 마라탕과 떡볶이는 해당사항 없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