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회에서 열린 ‘혼돈의 가상자산시장, 어떻게 해야 하나’ 기획 토론회에서 “현재 발의된 10여 개 가상자산 법안들이 모두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과 이용자 보호를 공통 중점 사안으로 두고 있다”면서 “산업 육성도 중요한 이슈이지만 주요 사안들 위주의 단계적 입법을 통한 일종의 ‘미니 입법’을 먼저 통과시켰을 때 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미니입법에 포함해야 할 중점 사안으로 가상화폐 분리 보관 의무와 시세조종 및 불공정거래 관련 조항을 꼽았다.
거래소와 같은 가상자산 사업자는 디지털 자산을 분리 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거래소들은 특정금융거래정보의보고및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등에 따라 사업 신고를 하고 행정지도를 받고 있지만, 법적인 디지털 자산 분리 의무는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가상자산 분리 의무를 법에 담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일 방안”이라면서 “거래소가 가상자산을 분리 보관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루나, FTX 사태 때 일어난 대규모 코인 인출 사태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시세 조종을 방지하기 위해 처벌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예컨대 공시 없이 수천억 원의 미발행 코인 물량을 매도한 위메이드는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시장 참여자가 모르는 공급량이 시장에 풀리게 되면 당연히 코인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며 “주식의 경우 자본시장법을 통해 이와 같은 행위를 엄격하게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니입법이 통과되면 △시장 안정화 효과 △강력한 사후적 제재 효과 △불공정거래 사전 예방 효과 △도덕적 해이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당국도 투자자 보호 등 시급한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규제가 필요한 부분을 단계적으로 보완하는 방법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동엽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과장은 “문제 시급성을 고려할 때 현 단계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부분부터 먼저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 “현재 국회 발의된 개정안 중 공통분모를 뽑아내고, 나머지 규제에 대해서는 글로벌 규제가 가시화된 후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또한 올해 안에 미니입법을 마련해야 투자자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당장 내년부터 가상화폐 과세가 시행되면 투자자가 소득 내역을 일일이 증빙해야 해 혼란이 가중된다”면서 “이를 줄이기 위해 거래소에서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내년 사업안을 잡아야 하는데 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준비가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안 통과는 또다시 해를 넘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예정됐던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회의가 취소됐다. 여야는 이날 ‘디지털자산법’을 다룰 예정이었다.
디지털자산법은 디지털자산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투자자와 산업 진흥을 보호하는 게 주요 골자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과 백혜련 민주당 의원 등 17건이 계류돼 있다. 윤석열 정부도 인수위원회 당시 ‘110대 국정 과제’에 디지털자산 기본법 추진 등 관련 내용을 내세웠다.
한편 이번 토론회에는 김한규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 위원장 박근모 디지털애셋 부편집장,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동엽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과장이 참석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