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서울에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마지못해,상경⑧]

나도 서울에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마지못해,상경⑧]

기사승인 2022-12-19 06:00:11
상경 청년에게 외로움은 익숙한 감정이다. 쿠키뉴스와 정치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지난 12일~18일 외로움 척도조사를 진행한 결과, 30대 상경 청년 10명 중 5명이 ‘상경 후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에는 사면초가에 빠진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나온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로에서 괴물 스킬라와 소용돌이 카리브디스 중 하나를 골라 맞서야 했다. 괴물은 부하를, 소용돌이는 배를 잃는 위험이 있었다. 나아가려면 선택해야 했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괴물과 싸웠고 부하 여섯을 잃었다. 그는 후회했을까, 문제에 정답은 있었을까.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만난 지방 청년은 모두 한 명의 오디세우스였다. 서울로 갈 수도 고향에 남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 인생.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일자리, 집, 생활비, 외로움의 고통이 따라왔다. 땅 위에서 부유하는 지방 청년들. 고향에 남은 이의 이야기는 [마지못해, 상경] 홀수 편에, 상경한 이의 목소리는 짝수 편에 담았다.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한 지방 청년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편집자주]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박주원(29·가명)씨. 박씨의 꿈은 바리스타였다. 지난 2019년 상경하자마자 한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달 만에 업무를 총괄하는 매니저가 됐다. 이후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행복은 잠시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대표의 폭언에 시달렸다. 결국 참지 못하고 사직서를 냈다. 억울했다. 어떻게든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런 연고 없는 서울. 도움을 구하거나 기댈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게 맞나요?’라고 묻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어요. 계속 혼자 알아가야 한다는 게 힘들었죠” 박씨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외로운 시간이었다.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 서울은 늘 인파로 붐빈다. 하지만 연고 없는 이곳에서 상경 청년들이 기댈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오랜 서울살이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사진=임형택 기자

대구에서 상경한 김진수(28·가명)씨는 친구들에게 ‘바쁜 사람’으로 통한다. 서울에 왔으니 만나자는 친구 연락에 일이 많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다. 점심 1만원, 카페를 가면 5000원. 술이 포함된 저녁 3만원. 친구에게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다. 고향에서와 달리 지갑을 여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다. 어마어마한 서울 집세와 생활비를 대려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외로울 때는 혼자 한강에 간다. 한강을 홀로 보는 건 돈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살면서 서울에 남으려는 내 자신이 불쌍해요. 서울이란 공간 자체가 참 징그러워요” 
일부 상경 청년들은 높은 서울 집세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약속을 피한다. 외로울 때는 한강 산책 등 돈이 들지 않는 활동을 하며 마음을 달랜다.   사진=박효상 기자

최벼리(여·31)씨에게 집은 여전히 대구 한 곳뿐이다. 서울살이 11년째지만 뿌리 내리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결혼도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최씨의 남편도 상경 청년이다. 양가 부모님은 모두 지방에 계신다. 친척들도 마찬가지다. 거리가 멀어지니 쉽게 도움을 구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다. 자녀를 원하지만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인지 현실적인 고민에 부딪힌다. 워킹맘이 돼도 도와줄 가족이 없다. 대구에 있는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서울에 태어났다면 달랐을까요” 최씨가 씁쓸하게 말했다.

외로움은 상경 청년을 지배하는 감정이다. 쿠키뉴스와 정치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지난 12일~18일 상경 경험이 있는 국민 303명을 대상으로 외로움 척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20대 40%, 30대 54.3%가 ‘상경 후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외로움 때문에 서울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답한 비율은 20대(18.2%), 30대(22.9%)에 그쳤다. 한 30대 응답자는 “일자리 때문에 외로워도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20대는 “만족보다는 생존을 위한 상경”이라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힘든 시기, 고향은 안식처 같지만 돌아가면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순천에서 올라온 25세 남성이 남긴 말이다. 외로운 상경 청년에게 해답은 없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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