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불꽃, 아프리카 소녀들을 살리다 [쿠키인터뷰]

BTS의 불꽃, 아프리카 소녀들을 살리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12-22 06:00:01
UN 총회에서 발언하는 그룹 방탄소년단. 청와대

“여러분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 심장을 뛰게 만듭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신념을 듣고 싶습니다. 당신이 누구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 정체성이 어떻든, 당신 자신을 이야기해주세요. 그럼으로써 당신의 이름과 목소리를 찾으세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은 4년 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3년 인권보호단체 저스티스 데스크(The Justice Desk·이하 TJD)를 세워 아프리카 일대에서 활동해온 제시카 듀허스트는 ‘당신을 말하라’(Speak yourself)는 메시지에 큰 울림을 느꼈다. 그는 RM의 연설에서 영감 받아 같은 해 음보코도 클럽(Mbokodo Culb)을 꾸렸다.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 등 트라우마를 겪는 소녀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듀허스트와 음보코도 클럽 활동가들은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슈피겐홀에서 열린 국제포럼 ‘더 나은 미래, 팬덤에서 희망을 찾다’를 통해 한국 아미(방탄소년단 팬덤)와 만났다. 문화마케팅그룹 머쉬룸(대표 김영미)이 진행해온 세 번째 인사이트 포럼이다. 행사는 콘텐츠 비즈니스 팬덤 플랫폼인 페스티버를 통해 펀딩으로 진행됐다. 포럼을 마친 뒤 서면으로 만난 듀허스트는 “세상을 바꾸려면 공동체 일원인 우리가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K팝 팬덤이 이런 변화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듀어스트와 나눈 일문일답.

‘더 나은 미래, 팬덤에서 희망을 찾다’ 포럼에 참석한 인권운동가 제시카 듀허스트. 머쉬룸

Q. RM의 UN 연설이 음보코도 클럽 시작에 어떤 영향을 줬나.

“RM은 UN에서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자신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이름과 목소리를 찾아라’라고 말했다. TJD도 모든 사람이 고유한 가치와 힘을 갖고 있으며, 진실을 말하고 변화를 주도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세상은 종종 법률가, 인도주의자, 정부 관계자, 자선가 같은 사람들만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동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최고의 전문가는 해당 공동체 구성원이다.”

Q. 모든 사람이 고유한 가치와 힘을 가졌다는 대목에서 ‘당신을 말하라’는 BTS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인권운동가로 일하며 ‘목소리 없는 이들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목소리 없는 이들을 위한 목소리’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목소리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불의로 인해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워졌다고 생각한다. BTS의 메시지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행위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우리가 모든 답을 안다거나 다른 이를 대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멈춰야 한다. 우리 목소리와 이야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것이다. 국가와 정부, 문화적 특성이 우리를 검열하고 입을 막더라도, 목소리를 내는 일은 꼭 필요하다. 자기 이야기를 전할 공정한 기회와 플랫폼을 가질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Q. 음보코도 클럽은 어떤 활동을 했나.

“우리는 강간 등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 소녀를 위해 워크샵을 열고, 정신 건강 관리와 트라우마 상담을 지원한다. 소녀들의 자신감과 체력을 높이기 위한 자기방어 수업도 제공한다. 우리는 음보코도 클럽을 통해 2000명 넘는 소녀들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 TJD는 음보코도 클럽을 포함한 여러 프로젝트를 벌여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다. 50만명 넘는 사람들을 인권운동가로 키웠고, 400명 넘는 청소년 대사를 배출했다. 이렇게 탄생한 일상 활동가들은 인신매매범을 잡고, 조혼을 끝내고, 학교 체벌을 폐기했다. 이렇듯 프로젝트 참가자가 변화를 주도할 권한과 방법을 얻는다는 점이 TJD의 가장 큰 성취다.”

Q. 아미가 음보코도 클럽의 시작을 도왔다고 들었다.

“남아프리카 아미들이 음보코도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초기 자금을 기부했다. 멘토로서 봉사활동도 했다. 아미들은 어린 강간 생존자를 돌보고 가르치는 방법은 물론,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어린 소녀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힘을 불어넣는지 등을 배웠다. 그들은 놀라운 봉사자이자 멘토였다. TJD가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줬다.”

‘더 나은 미래, 팬덤에서 희망을 찾다’ 포럼에 참석한 음보코도 클럽 활동가들. 머쉬룸

Q. 가장 좋아하는 BTS 노래는 무엇인가.

“정국이 부른 ‘드리머’(Dreamer)는 TJD 팀과 소녀들에게 강력한 영감을 줬다. 제도적 불의와 억압에 둘러싸인 사람들이 미래를 낙관하며 싸우긴 매우 힘들다. 하지만 이 곡 가사는 듣는 이에게 용기를 준다. 꿈을 찾고 변화를 만들려는 열망, 신념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Q.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세계 곳곳의 시위에서 K팝 팬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나.

“청년들은 사회운동을 이끄는 선구자다. 그들은 불의와 억압에 가장 먼저 맞서 변화를 촉구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목숨 걸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늘날 전 세계 청년은 K팝, 특히 BTS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BTS가 주는 메시지가 부패한 기득권부터 정신 건강, 기후 위기, 인종차별, 기성세대의 권력 독점에 이르기까지 청년의 다양한 고민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BTS 음악을 사회운동에 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BTS 음악은 듣는 이들에게 감정적, 정신적, 혹은 신체적 반응을 일으킨다.”

Q. K팝 팬덤이 인권단체와 어떤 관계를 맺길 바라나.

“BTS로부터 영감을 얻은 아미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놀라울 만큼 헌신적으로 봉사해줬다. 물론 팬덤 활동 대부분은 여전히 MD나 음반을 소유하고 공연을 보는 행위에 집중돼 있다. 나는 팬덤 문화가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데 뿌리를 두길 바란다. BTS 등 아티스트에게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중요하지 않은가. 공동체 움직임을 돕는 일이 예외적인 이벤트가 아닌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길 바란다.”

Q. 전 세계 아미와 K팝 팬덤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나.

“세상이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변화를 못마땅해할 때, BTS는 우리 목소리와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변화는 우분투(공동체) 정신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되새겨줬다. TJD는 이런 가치를 원동력 삼아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우리가 불의한 상황에서 침묵할 때, 우리는 압제자 편에 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여러분을 모르지만 내가 믿는 아미는 절대 침묵하지 않는다. 목소리를 높이고 움직이고 우리가 진정 자유로워질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말자. BTS가 불을 붙였다. 이제 그 불꽃으로 세상을 바꾸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음을 증명하자.”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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