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안경 관찰하며 숨은 새 찾는 재미 쏠쏠
- 강추위와 거친 파도 헤치며 힘차게 자맥질
- 파란바다 위에서 삼삼오오 서핑 즐기기도
- 민물과 바다 만나는 기수역은 영양 공급처
- 동해안은 탐조· 먹거리‧ 풍광 3박자 갖춰
어느 새 겨울의 한복판이다. 쿠키뉴스 조류탐사팀은 지난 12월 4일에서 20일까지 2회에 걸쳐 화진포에서 울진까지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에서 겨울을 보내는 해양성조류를 관찰했다. 동해안은 탐조는 물론 먹거리와 풍광이 우수해 쌍안경 목에 걸고 일년에 한두번쯤은 다녀올만한 탐조여행 코스이다. 취재에는 동해안 지역을 30년 넘게 관찰·기록하고 버드투어(birdtour)를 진행해 온 야생조류 전문가 서정화(59) 하남시환경교육센터장이 동행했다.
“흑기러기는 품위 있는 귀부인 같고, 옹기종기 모여 다니는 세발가락도요 무리는 유치원 원생들 같이 귀여워요, 흰비오리는 귀염둥이 팬다곰 같고요, 흰줄박이오리는 목각공예 장인의 작품 같아요.” 동해안 아야진 바닷가에서 만난 김정미(48·서울) 씨는 망원렌즈로 흰줄박이오리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대답한다.
갯벌과 대규모로 조성된 간척지를 먹이터와 쉼터 삼아 기러기와 오리, 도요류 등 겨울새 무리를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서해안 지역과 달리 동해안은 얼듯 보면 갈매기류 외에는 다른 새들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조류전문가나 생태사진가, 탐조객들이 먼거리 동해안 지역을 즐겨찾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서남해안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힘든 종들이 이 지역에서 서식하거나 거쳐가기 때문이다.
특히 멸종위기 2급인 흑기러기와 검둥오리, 검둥오리사촌, 흰줄박이오리, 회색 머리 아비, 큰 회색 머리 아비 등 아비류와 쇠가마우지, 검은목논병아리, 귀뿔논병아리, 바다꿩 등도 서해안에서는 쉽게 관찰이 어렵다. 갈매기류도 서해안에 비해 붉은부리갈매기, 큰재갈매기, 재갈매기를 비롯해 세가락갈매기, 흰갈매기, 수리갈매기, 고대갈매기 등 다양한 종이 관찰된다.
동해안에 서식하거나 이동하는 겨울새들은 바닷가 보다는 뭍에서 떨어진 먼바다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과의 만남이 쉽게 허락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욱 동해안의 항구나 해안을 따라 귀한 새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생명 하나가 귀하지 않을까?’
쪽빛바다와 파란하늘을 쉼 없이 가르는 하얀 포말을 경계로 마음껏 유영하는 겨울새들을 바라보면 어느새 관찰자도 찌든 일상을 벗어나 자유인이 된다.
때로는 백사장을 박차고 올라 흰 눈 덮인 태백산맥을 배경으로 무리지어 날갯짓하는 청둥오리들의 모습도 장관이다. 역광으로 내리쬐는 아침햇살 윤슬에 물방울을 날리며 발레리나처럼 발목을 한껏 곧추세우고 날개 짓하는 흰비오리의 자태도 우아하고 물위를 달음박질하다 날아오르는 가마우지 무리도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해녀 못지않은 잠수 실력을 가진 아비류와 검둥오리, 바다비오리 무리는 거친 파도도 아랑곳하지 않고 숨고르기가 끝나면 푸른 바다 속으로 연이어 자맥질하며 먹이활동에 분주하다. 논병아리 역시 잠수실력이 뛰어난데 어렵게 잡은 물고기를 갈매기가 낚아채려하자 잽싸게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도 관찰되었다.
고성군 죽왕면 문암2리항에는 일명 곰보바위로도 불리는 국가지질공원 능파대(凌波臺)가 있다. 잠시 기묘한 바위 형태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서 센터장이 조용히 손짓을 한다. 쌍안경을 건네주며 괭이갈매기 사이에 흑기러기와 세가락도요가 있으니 위치를 확인하고 빨리 차에서 대포(초망원렌즈)를 꺼내오라고 한다. 천연기념물인 흑기러기는 운이 좋아야 촬영이 가능한 새여서 혹이라도 날아갈까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바위에 붙은 싱싱한 해초류를 뜯어먹느라 정신이 없는 듯 보였다. 흑기러기 옆에는 세가락도요 무리가 파도가 바위를 덮으면 잠시 피했다가 다시 먹이활동에 여념이 없다. 덕분에 나들이 나온 어린이집 원생들처럼 앙증맞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삼척시 근덕면 맹방해변 앞바다에서 만난 청둥오리 무리는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 하구의 모래톱에서 해바라기를 하다 일제히 거친 바다에 내려앉아 신나게 파도타기를 즐긴다. 내륙의 호수에서 여유롭게 다니는 모습과는 또 다른 그림을 연출해주고 있었다. 청둥오리와 달리 갈매기를 비롯해 바다새들은 따사로운 겨울 햇살아래 몸단장을 하거나 민물에 들어가 목욕을 즐기고 있다.
잔잔한 포구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수백 마리의 괭이 갈매기 무리에서 흰갈매기와 재갈매기, 세가락갈매기 외에도 행운이 따르면 고대갈매기를 찾는 재미도 남다르다. 쌍안경으로 유심히 포구 구석구석을 살피다보면 지치거나 몸에 기름이 묻어서 사람들 가까이 찾아온 먼 바다 새들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항구에서 오징어를 손질하면서 어민들이 내장을 던져주면 성조, 유조 할 것없이 서로 먹이를 차지하려 다투는 모습은 그대로 삶의 현장이다.
서정화 하남시환경교육센터장은 “바다와 접한 동해안 7번국도 따라 항구와 해변, 석호,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하구를 찾아 겨울 바다 새들과 조우는 특별한 경험”이라며 “동해안 탐조는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땀내 나는 현장과 다양한 먹거리가 함께하는 행복한 여정”이라고 말했다.
바다와 민물을 함께 담고 있는 화진포, 송지호, 영랑호, 청초호 등 석호(潟湖)는 겨울진객들의 훌륭한 쉼터이자 먹이터이다. 청초호 상류에서는 비오리 암수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사랑놀음에 바쁘고 물닭 무리는 호수 위를 힘차게 달리며 누가 더 멋진 물제비를 만드는지 경주를 한다.
흰죽지와 댕기흰죽지 가족은 물가까지 나와 관람객들에게 포즈를 취해준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해도 깃털에 맺힌 물방울과 눈망울까지 선명하게 나올 정도이다. 사람에게 거리를 잘 주지 않는 흰비오리 한 쌍은 호수 한가운데서 연신 항문 아래쪽 기름샘에다 부리와 얼굴을 문질러 기름을 묻힌 후 몸의 구석구석에 바르며 방수작업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석호에 찾아드는 새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 새를 사랑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경포호의 명물 큰고니 무리도 이번 취재기간 보지 못했다. 서 센터장은 “속초 시내에 위치한 청초호나 경포호의 경우 주변에 대형 건물이 들어서고 개발이 되면서 새들이 많이 떠나지 않았나 판단된다.”고 말한다.
강릉 남대천 하류 지역 역시 내륙에 사는 새들과 바닷새들의 집합소이다. 이곳의 새들은 평화롭게 먹이활동을 하다 이따금 혼비백산하며 줄행랑 치기도 한다. 다름 아닌 하늘의 왕자 흰꼬리수리의 출현 때문이다. 어느 순간 소리 없이 나타나 날카로운 발톱으로 먹잇감을 사냥해 날아오른다. 사냥한 먹잇감을 빼앗으려는 동료와의 싸움도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하다. 이 장면을 포착하기위해 남대천은 생태사진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해안 일대는 서해안의 도요류나 기러기 무리, 철원평야의 두루미처럼 대규모 군무를 펼치지는 않지만 종의 다양성에서는 서남해안 못지않다. 20년 넘게 남대천을 비롯해 동해안의 조류를 카메라에 담아온 생태사진가 이종원(74) 씨는 “청정해안이 길게 이어진 동해안은 먹이생물의 분포가 다양한 석호(潟湖)를 비롯해 해초류와 어패류 등 신선한 먹이가 풍부해 종이 다채롭다.”면서 “조류촬영이나 탐조활동 시 새들이 놀라지 않게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동해안과 바다와 접한 석호, 남대천 등 바다와 연결되는 하구 등 이 지역에서 겨울을 보내거나 동토(凍土)의 시베리아를 떠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떠나는 겨울새들의 종류는 다양하다.
큰고니와 혹고니, 흰꼬리수리, 참수리를 비롯 댕기물떼새, 세가락도요, 고방오리, 쇠오리, 청둥오리, 흰죽지, 꼬마흰죽지, 검은머리흰죽지, 댕기흰죽지, 청머리오리, 홍머리오리, 비오리, 알락오리, 넓적부리, 흰비오리, 흰뺨오리, 호사북방오리, 바다직박구리, 알락해오라기, 바다꿩, 물닭, 매, 말똥가리 등 60여종이 넘는다. (위아래 사진들은 이번 취재에서 촬영한 사진 외에 그동안 동해안에서 귀한 새를 기록해온 서정화·이종원 작가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고성·속초·강릉·동해·울진=글·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사진=곽경근 대기자, 서정화 하남시환경교육센터장, 이종원 생태사진가/ 드론촬영=왕보현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