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이 노사 협의 끝에 새해부터 간호사를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다. 국내 대학병원이 주 4일제를 도입하는 것은 세브란스가 처음이다. 이례적인 시도에 의료계와 노동계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그동안 간호사들의 과로를 해소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꾸준했다. 간호사는 업무 특성상 지속적으로 긴장과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는 것은 물론, 장시간 노동과 교대제 근무 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근무조건을 소화해야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평균 근로시간이 1시간 증가할 경우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전체적으로는 18.6명, 악성 종양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명, 뇌혈관계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5.5명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대제 근무자의 건강은 더욱 취약했다. 교대근무를 하는 근로자는 일반 근로자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22.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야간 근무 교대를 수행하는 근로자의 정실질환 발생 위험은 그렇지 않은 근로자에 비해 27.6%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연세의료원측과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은 단체교섭에서 주 4일제 도입을 합의했다. 지난달부터 적용 부서 및 참여자 선정, 근무표 운영 기준 등 세부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해 왔다. 2023년 1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노동 강도 완화가 시급한 직무로 꼽히는 병동 간호사들이 주 4일제 근무를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됐다. 강남 세브란스병원과 세브란스병원(신촌 소재)의 3개 병동에서 1년 동안 시범사업이 진행된다. 부서당 5명이 6개월 단위로 참여해, 연간 상반기 15명·하반기 15명으로 총 30명이 주 4일제로 근무하게 된다.
주 4일제 적용 간호사 선발과 적용 시기는 각 부서가 자체적으로 결정했다. 병동마다 인력의 여건과 운영 상황이 상이하다는 특성을 고려해 전적으로 근로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김은희 세브란스병원 노조 사무처장은 “노조나 병원이 일률적인 기준을 강요할 수는 없다”며 “간호사들의 근무를 원활하게 하고, 병동 전반의 업무와 운영에도 지장이 없으면서 대체자 투입과도 조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세의료원 노사는 주 4일제가 정상적인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조율했다. 추가 투입 인력으로는 경력자를 우선적으로 배정했다. 투입 시기도 시범사업 시작 전 조기에 배정, 교육은 이미 진행 중이다. 간호업무 특성상 부서 이동 초기 부서적응, 교육 등으로 일시적으로 부서원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점을 고려한 조처다. 추가인력 투입을 위한 기간제·단시간 근로자 고용은 없다. 주 4일제를 적용해도 병동은 기존 정규직 근로자만으로 운영된다.
간호사들이 선발대가 됐지만, 향후 사무직을 포함한 다른 직군도 주 4일제를 적용할 수 있다.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은 시범사업의 효과와 근로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 이에 근거해 타 직군으로 적용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권미경 세브란스병원 노조위원장은 “주 4일제 시범사업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모든 병원노동자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 노동강도를 낮추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주 4일제는 세브란스 노조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적용된다. 김 사무처장에 따르면 세브란스 노조는 5400여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사업장 내 조직률이 가장 높다. 과반수 근로자들이 가입한 노조로서 사용자측과 대표로 교섭할 교섭대표 노조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 4일제 협약이 포함된 단체협약은 세브란스 노조 조합원뿐 아니라, 다른 소수 노조 조합원을 비롯한 모든 근로자들에게 적용된다.
임금 감소를 비롯한 근로조건 저하는 최소화했다. 김 사무처장은 “주 4일제를 적용할 시 이론적으로는 임금이 기존과 비교해 약 20% 정도 감소하게 되는데, 노사 협의 결과 약 10% 감소하는 수준으로 결정됐다”며 “그 밖에 기본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되는 각종 수당과 연차유급휴가 등 근로조건은 종전보다 저하되는 부분 없이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노조 측은 현재 연세의료원 주4일제 시범사업 TF를 발족,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연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시간과 강도, 직무 및 기관 만족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동일부서 주5일 근무자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종합적인 검토를 준비 중이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