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 6일 만에 5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원작 만화를 접했던 3040 남성들 뿐만 아니라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10대, 20대도 극장을 찾는 모습이다.
슬램덩크의 매력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다. 풋내기지만 엄청난 리바운더 ‘강백호’, 돌파와 슛팅까지 되는 만능 포워드 ‘서태웅’, 단신이지만 누구보다 빠른 ‘송태섭’, ‘대들보’ 채치수, ‘불꽃슈터’ 정대만 등 아픈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해 공감을 자아낸다. 완벽하기만 한 산왕의 에이스 ‘정우성’ 역시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원작자인 이토우에 다케히코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뛰던 선수들을 참고해 만든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작가가 직접 언급한 몇몇 캐릭터를 제외하곤, 캐릭터 대다수는 롤모델이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캐릭터들의 모티브가 된 선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오랜 기간 열띤 토론을 이어왔다.
이에 쿠키뉴스는 영화의 중심인 북산고의 모티브가 된 NBA 선수들을 소개하는 장을 마련했다. 롤모델이 확실한 캐릭터를 제외하곤, 팬들의 의견과 기자의 사견을 곁들여 최종 후보를 추렸다.
송태섭 : 먹시 보그스 or 케빈 존슨
송태섭은 작중 168㎝의 단신 가드다. 단신이지만 스피드와 패스가 강점인 선수다.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송태섭의 모티브가 된 선수는 NBA 역사상 최단신 가드인 먹시 보그스(160㎝)로 예상된다.
1987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3순위로 워싱턴 불리츠(현 워싱턴 위저드)에 지명된 보그스는 뛰어난 운동 능력과 스피드로 장신 선수가 수두룩한 NBA 무대에서 14시즌간 889경기를 뛰며 평균 7.7점 7.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보그스의 좋지 않은 패스 능력을 지적하면서, 피닉스 선즈에서 12시즌간 뛴 케빈 존슨이 송태섭의 롤모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존슨은 4번의 All NBA 세컨드 팀, 3번의 올스타 팀에 선정된 90년대 대표 가드다.
공격형 포인트 가드로 이름을 날린 존슨은 통산 13시즌을 뛰며 평균 17.9점 9.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화려한 돌파와 마무리 능력이 일품인 ‘돌격 대장’ 스타일이었다. 그의 등번호 7번은 피닉스 선즈에서 영구 결번 처리되기도 했다.
정대만 : 레지 밀러
정대만은 슬램덩크에 나온 캐릭터 중 가장 모티브가 된 선수를 꼽기 어려운 인물이다. 이노우에 작가는 정대만을 두고 “상상해 만들어 낸 캐릭터”라고 짚기까지 했다.
그러나 팬들은 정대만의 모습에서 뉴욕 닉스에서 활약한 존 스탁스와 ‘3점슛의 화신’ 레지 밀러를 떠올린다. 특히 정대만의 트레이드 마크인 3점슛인 점을 들어, 밀러가 정대만의 모티브라는 데 힘을 싣고 있다.
밀러는 NBA 역대 최고의 슈터를 뽑을 때 거론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NBA에서 밀러는 통산 2560개의 3점슛을 성공하며 이 부문 3위에 올라있다. 특히 밀러는 동료들의 스크린을 받아 3점슛을 잘 넣기로 유명했다. 이는 산왕공고전에서 체력이 다 떨어져 채치수의 스크린을 활용하는 정대만과 꼭 닮았다.
밀러는 우승컵을 빼고 모든 것을 다 손에 쥔 선수였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만 18시즌간 평균 18.2점을 기록했고, 5번의 올스타, 3번의 All NBA 서드 팀에 선정됐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고 NBA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밀러는 ‘밀러 타임’으로도 농구팬들에게 유명세를 떨쳤다. 1994~1995시즌 동부 컨퍼런스 2라운드 뉴욕 닉스와 1차전에서는 소속팀 인디애나가 종료 16.9초를 남긴 상황에서 6점차로 뒤지고 있었다. 사실상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8.9초 동안 8점을 몰아 넣어 역전승으로 이끄는 NBA 역사상 손꼽히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서태웅 : 마이클 조던
서태웅은 NBA 역대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마이클 조던을 모티브로 그려진 캐릭터다. 이노우에 작가는 서태웅을 그릴 때 조던을 참고해 그렸다고 밝힌 바 있다.
농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조던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조던은 6번의 NBA 파이널 우승, 통산 10회 득점왕, 정규리그 MVP 5회, 파이널 MVP 6회, NBA 올스타 14회, ALL NBA 퍼스트팀 10회 등 수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조던의 커리어는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화려한 플레이는 물론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등 성격까지 서태웅은 조던을 꼭 닮아 있다. 차이점을 둔다면 서태웅이 과묵했던 것과 달리 조던은 경기 코트 내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선수였다. 조던은 팀원들에게도 상대팀에게도 독설을 퍼붓는다.
조던은 커리어에서 수 많은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어냈지만, 이 중 백미는 1998년 유타 재즈와의 파이널 6차전이다. 1점 차로 뒤진 상황에서 칼 말론의 공을 스틸 후 브라이언 러셀의 밀착 마크를 크로스 오버로 따돌린 뒤 우승을 결정짓는 샷을 성공시켰다. 후에 이는 ‘더 라스트 샷(The Last shot)’이라고 불리게 됐다.
강백호 : 데니스 로드맨
헤어스타일부터 예측 할 수 없는 기행까지, 강백호는 데니스 로드맨 그 자체였다.
강백호는 북산고에서 등번호 10번을 달았는데, 로드맨 역시 현역 시절 초기 등번호 10번을 달고 뛰었다. 시카고에서는 91번, LA 레이커스에서는 73번을 달았는데 이는 해당 팀에서 10번을 쓸 수 없어 숫자의 합이 10이 되는 숫자를 대신해 썼다.
이노우에 작가는 강백호가 공을 향해 몸을 던지는 허슬 플레이나, 악착같은 리바운드도 로드맨의 플레이스타일에서 가져왔다. 약점이었던 자유투나 슛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로드맨이 슬램덩크로 들어와 뛰는 듯 했다.
다만 강백호와 로드맨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강백호가 서태웅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항상 도전하는 입장이었다면, 로드맨은 조던에게 최고의 동료였다. 조던의 화려한 플레이는 로드맨의 헌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1997~1998시즌에는 2인자였던 스코티 피펜이 구단과 부상, 불화 등의 이유로 경기에 나서지 않을 때 조던이 가장 의지한 선수가 로드맨이었다.
로드맨은 기행 때문에 커리어에서 저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올해의 수비수상 2회, NBA ALL 디펜시브 퍼스트팀 7회 등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또 우승 반지도 무려 5번이나 꼈다.
채치수 : 데이비드 로빈슨
채치수의 모티브가 된 선수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1990년대 4대 센터라 불리던 데이비드 로빈슨과 패트릭 유잉이 모티브로 언급되는데, 둘 다 채치수와 스타일도 흡사하고 팀의 공헌도도 높았던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외관이 비슷한 로빈슨이 모티브라는 데 힘이 실리고 있다.
채치수가 북산고의 영혼이었다면, 데이비드 로빈슨은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지탱하는 선수였다.
1987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샌안토니오에 입단했던 그는 1994~1995 시즌에 리그 MVP를 수상하는 등 혼자서도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로빈슨도 우승 트로피를 쉽게 들지 못했다. 매번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좌절을 겪었다.
로빈슨의 터닝 포인트는 팀 던컨이 합류한 1997~1998시즌부터다. 이전까지 홀로 팀을 묵묵하게 지켜왔던 그는, 커리어 말년에 최고의 파트너인 팀 던컨을 만나게 된다. 던컨의 재능을 알아본 로빈슨은 팀의 조력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북산의 변화한 팀 상황과 맞물려 '가자미'가 되겠다고 결심한 채치수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로빈슨은 결국 1998~1999시즌에 커리어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다. 2학년 때까지 혼자 고군분투해도 도대회를 넘지 못했던 채치수가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이 합류하고 전국 대회에 진출했듯이.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