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주주, 주주, 주주 얘기뿐이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에서 SM 경영진과 하이브는 주주를 향해서만 호소를 거듭하고 있다. 업계에선 SM 경영권 분쟁에 팬들 목소리가 소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K팝 미래 먹거리인 2차 지식재산(IP) 수익화를 위해선 팬덤 강화와 확장이 필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처사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3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열린 ‘SM 경영권 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이번 분쟁에서 콘텐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아티스트나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 입장이 얼마나 대변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아티스트와 팬덤이 소외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실제 지난달 SM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올라온 뒤 SM 소속 아티스트들은 뚜렷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 SM에 17년간 몸담은 가수 겸 배우 김민종이 이수만 전 프로듀서를 옹호하는 메일을 SM 직원들에게 보낸 게 전부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구설에 오를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혼란스럽기는 팬들도 마찬가지. SM 팬덤과 하이브 소속 그룹 방탄소년단 팬덤 등은 대체로 하이브의 SM 인수에 반대하는 분위기지만, 기획사를 압박할 수준으로 여론이 모이지는 못했다. “내가 응원하는 스타의 활동 가능성이 (하이브 혹은 카카오 인수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쪽에서 더 높아질 두려워하는 동시에, 어디로 가도 (활동 방향은) 그대로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 속에서 팬덤이 움직이는 것”(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라는 진단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날 토론회에서 “SM 경영권 분쟁에서 아티스트와 팬덤은 방패막이로 사용된다”고 비판했다. 하이브와 SM 경영진 모두 자신들 전략이 아티스트와 팬덤에게 이롭다고 호소하지만, 정작 당사자들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평론가는 “각 기업은 아티스트와 팬덤에게 최소한의 지지 혹은 동의를 받고 움직이는가”라고 물으며 “이번 분쟁에서 이들 목소리가 너무나도 경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중심으로 개편된 팬과 아티스트 간의 소통 방식이 팬들의 자율적인 연결이나 정치적 활동 가능성을 희석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팬 활동 영역이 기획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종속돼 하나의 집단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소수 기업이 팬덤 플랫폼 사업을 독점 운영하면서 소통마저 소비 자원이 됐다. 이로 인해 팬덤은 소비자로 환원돼 자발적인 연대가 흐릿해졌다”면서 “SM 인수전 결과와 상관없이 K팝 생태계에 팬덤이 개입할 지점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다만 팬덤 내부에서 관련 논의가 벌어지고 의견이 모이면, 단체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일부 SM 팬들이 최근 하이브 사옥 앞에서 하이브의 SM 인수에 반대하는 트럭 시위를 벌인 것이 그 예시다. 이 교수는 “아티스트와 팬들을 위한 제3의 대안은 없는지 묻고 싶다”며 “오는 31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팬들의 목소리를 내는 소액주주 운동을 벌이거나, SM의 독립성·자율성·투명성을 위한 감시 활동, SM 소속 아티스트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팬덤의 공동행동 등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지행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은 “SM 경영권 분쟁에 팬덤이 개입할 여지가 제한적이다. 팬들은 링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며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스타를 응원하겠다’는 감정적 위치밖에 가질 수 없어 패배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K팝 팬덤은 소비자일 뿐 아니라 정치적 담론을 만드는 역할도 해왔다. 팬들이 SM 주주가 돼 금융자본 주체로 역할을 넓히면 (팬덤 활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