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은행업 개편에 나선 가운데 美 실리콘벨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발생했다. SVB 파산 사태를 두고 은행의 공공성 입증과 함께 정부의 개입 필요성을 보여준다는 시각과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은행의 체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고객 예금을 예금보험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하기로 했다. 미 연방예금보험의 당초 은행 계좌당 최대 보호한도는 25만달러이다. 여기에 미 정부는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자금 공급에도 나섰다.
이같은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7년 말 IMF 사태 이후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금융거래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예금전액을 2000년 말까지 보장했다. 현재의 국내 예금자보호 한도 5000만원은 2001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민간 은행에서 발생한 피해를 보전해주는 꼴이다. 이는 정부가 은행의 경영과 영업에 개입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은행을 사실상 ‘공공재’로 규정하고 은행의 ‘돈 잔치’를 강하게 질타한 바 있다.
SVB의 파산 원인 중 하나로 규제 완화가 꼽히고 있는 점도 정부의 은행 개입을 더욱 뒷받침한다. 미국은 당초 자산 500억달러 이상의 은행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IFI)로 분류하고 강화된 감독 기준을 적용했다. 하지만 2018년 규제 완화에 따라 적용 기준이 자산 500억 달러에서 2500억 달러로 상향되면서 SVB는 강화된 감독을 받지 않게 됐다.
따라서 이번 SVB 사태를 은행의 공공성을 입증하고,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정부도 이러한 시각에서 현재 은행의 경쟁 촉진부터 성과급·퇴직금까지 경영 및 영업과 관련한 제도·관행을 총체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은행의 파산을 결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 은행의 체질을 개선하고 사회환원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인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것은 그만큼 정부의 개입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SVB 사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SVB 파산의 결정적 이유가 고금리에 있는 만큼 은행 경쟁 촉진보다 기초 체력 보강에 집중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은행의 체력 보강이 필요한 시기에 경쟁 촉진으로 국내에서도 SVB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25%에 불과하다.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지속된 금리 인상과 최근 경기 침체에 따라 향후 연체율 상승이 우려되고 있다. 실제 4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우리·NH농협, 신한은행 제외)의 기업 신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1월 0.05%에서 올해 1월 0.10%로 상승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경쟁이 촉진되면 은행에서는 무리한 영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금리 불확실성이 높고 유동성 위험이 존재해 내실을 다질 때”라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