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사태가 발생하면서 과점체재에 놓여있는 은행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논의중인 ‘챌린저뱅크’ 도입 논의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금융회사가 금리인상의 악영향을 받으며 위험성이 증대되는 만큼 경쟁 촉진보다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번 달 초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제1차 회의’를 열고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을 논의했다. 여러 가지 방안 중 나온 것이 소규모 특화은행(챌린저뱅크) 도입이다. 챌린저뱅크란 소규모 신생 특화은행을 일컫는 말로 종합 은행업 라이선스를 받지 않고 개인영업, 기업영업, 주택 담보대출, 신용카드 등 특정 서비스에만 특화되어 주력하는 특징이 있다.
이번에 파산하게 된 SVB도 챌린저뱅크로 분류될 수 있는데, 1차 회의 당시 SVB는 챌린저뱅크의 좋은 선례로서 언급됐다. 금융당국은 SVB처럼 특화된 분야에 강점을 가진 신규 플레이어가 금융권에 진출하면 은행서비스 경쟁촉진은 물론, 비용절감 등을 통한 금융서비스 수수료 인하, 소상공인, 벤처기업 등에 대한 관계형금융‧신용평가고도화 등 기존 은행서비스 공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 파산사태에 이어 같은 챌린저뱅크인 시그니처은행마저 함께 파산하면서 특화은행 도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당초 금융권에서도 특화은행은 시장에 안착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을 꾸준히 제기한 바 있다. 코로나19를 지나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금융사들의 건전성 악화 및 수익성 하락 등 악재가 겹친 상황이라 신규 플레이어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게 이들의 의견이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SVB는 일반적인 상업은행들이 가계 예금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과 달리 벤처캐피털 산업에 집중하면서 주로 기술·헬스케어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주요 고객이었다”며 “특정 산업에 초점을 맞춘 은행이라는 한계로 예금의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특화은행 설립보다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금융위, 금감원에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소위 ‘스몰라이센스’ 은행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며 “현재는 이런 구조조정을 통한 새로운 은행업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은행의 재무건전성과 활동성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에서는 과점체제 개편을 위한 논의를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이번 사태는 SVB의 특수한 영업구조가 최근 금융긴축 과정과 맞물려 발생한 경우”라며 “미국 정부 및 감독 당국이 모든 예금자를 보호하기로 함에 따라 시스템적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분간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경계감을 갖고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