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년 새 가장 더웠던 지난 3월, 봄꽃들 순서 없이 꽃 피워
-‘벚꽃축제’ 자치구들… 예정된 일정 그대로 소화
식목일인 5일 전국적으로 내린 봄비는 긴 가뭄에 시달린 남부지방에는 단비가 되어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게 되었다. 도심의 벚꽃은 떨어지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봄꽃들과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면서 나무들은 활력을 되찾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전해준다. 모처럼 축제를 준비한 각 자치구에겐 아쉬움이 묻어난다.
기후변화로 봄꽃 개화 시기가 점점 빨라지면서 봄꽃의 향연은 어느 순간 지나고 신록이 빠르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취재진은 5일 봄비가 하루 종일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동안 동작구 국립묘지, 여의도 윤중로 일대, 과천 렛츠런 파크, 남산순환도로, 성동구 서울숲, 송파구 석촌호수의 벚꽃 낙화 상황을 둘러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도 아름답지만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는 꽃잎에 내려 앉아 영롱한 물방울 속으로 세상을 담아 놓았다. 어느 순간 바람이 불어와 물방울과 함께 날리는 연분홍 꽃잎들은 도로 위에 쌓여 분홍빛 둔덕을 만들었다.
그 곁을 따라 빗물을 흘러간다. 현충원 정문에서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수양벚나무의 꽃들이 봄비에 흠뻑 젖어있다. 연분홍 꽃잎을 떨구고 연록의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벚꽃이 낙화한 자리에 개나리, 진달래, 조팝나무와 사과나무가 화사한 꽃을 피워냈다.
지난 1일 나만 알고 싶은 벚꽃 명소 렛츠런파크 서울 '야간 벚꽃축제'가 개막되어 주말 내내 과천시민을 비롯한 경기도민과 서울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렛츠런파크의 벚꽃도 엔딩을 맞았다. 이날 일반인 관람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점심시간 산보에 나선 한국마사회 직원들만 비에 젖은 벚꽃을 보며 봄 축제를 마감하는 분위기였다.
서울 시내의 벚꽃들 보다는 1주일에서 열흘가량 늦게 절정을 이루던 남산 남측순환로의 벚꽃들도 오늘 내린 비를 피해가지 못했다. 꽃잎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졌고, 벚꽃터널은 흔적만 남았다. 남산 남측순환로를 따라산책에 나선 김인호(67· 용산구)씨는 “남산의 벚꽃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찬란하게 피고 또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가 특징인데. 올해는 봄비로 벚꽃터널이 다 망가졌다”며 아쉬워했다.
이날부터 오는 주말까지 석촌호수 일대에서 벚꽃축제를 준비한 송파구는 벚꽃축제 대신 봄꽃축제로 이름을 바꿔 계획대로 진행한다. 5일 저녁 6시 개막식 ‘벚꽃맞이’를 시작으로 5일간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친다. 밤이 깊어지면서 2.6km 호수 산책로를 따라 1,120주 벚꽃나무를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조명은 내리는 보슬비와 함께 황홀한 야경을 선사했다.이 외에도 영등포구 윤중로 일대 등 벚꽃 명소들의 2023년 봄 축제는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봄꽃도 피는 데도 순서가 있다. 혹한 속에 망울을 내밀기 시작한 동백을 시작으로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등의 순으로 꽃잎을 터뜨린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순서도 무너져 두서없이 피고 진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진해에서 벚꽃 소식이 전해지면서 봄바람 타고 순차적으로 상경하는데 벌써 서울도 벚꽃이 대부분 지고 말았으니 기후 변화를 몸소 실감하게 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3월은 51년 사이 가장 더운 달이었다. 고기압의 발달로 저기압이 북쪽과 남쪽으로 지나가면서 강수량도 적었고 지난달 전국 평균기온은 9.4도로 1973년 이후 3월 평균기온으로는 가장 높았다.
글·사진=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