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의혹’에 따라 위기에 처한 더불어민주당이 때아닌 ‘대의원제 폐지’를 두고 당내서 대립 중이다. 돈봉투 사건의 근본 원인은 당원 참여권을 제한한 대의원제도 탓이라면서 폐지를 주장하는 측과 사건의 본질을 한참 벗어났다는 측으로 갈리면서 암묵적인 논쟁 중이다.
26일 민주당 청원게시판을 확인한 결과, 최근 불거진 돈봉투 사건의 원인은 ‘대의원제도’에 있다는 내용의 청원 글이 지난 18일 올라왔다. 그간 당원들의 요구에도 폐지되지 않는 대의원제도가 구태적이고, 기득권적이라는 주장으로 최근 불거진 돈봉투 사건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27일 현재 2만5000여 명의 권리당원이 동의한 상태다. 30일 이내 5만명의 권리당원이 청원 동의하면 당은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혀야만 한다.
다만 해당 청원은 돈봉투 사건의 본질과는 상당히 벗어난 관점이자 논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돈봉투 의혹이 발생한 것을 제도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고 재발 방지책을 논의하기에는 때가 다소 이르다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26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대의원들의 영향력이 당원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 표의 등가성이 안 맞고, 이에 따라 돈봉투 사건이 발생했다는 게 요지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한참 벗어난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대의원이 아닌 당원들에게 더욱 큰 영향력이 생길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당원을 대상으로 한 돈 살포 행위가 전혀 없을 것이란 보장을 할 수 있느냐”며 “인식 개선이 문제의 핵심이지, 이를 단순히 제도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맞지 않는 논리”라고 강조했다.
비명계 의원들은 일각의 대의원제 폐지 주장은 때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피력 중이다. 사건의 본질을 보고 진상규명에 집중해서 당을 위기에서 구해야 할 때인데 신세 좋게 나중에야 논의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하자고 주장하는 꼴이라는 비판이다.
비명계 한 의원은 같은 날 쿠키뉴스에 “대의원제도는 당 운영을 위해 당이 선택한 제도이기에 필요에 따라서 충분히 없애거나 축소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돈봉투 의혹의 진상규명이 우선돼야 한다”며 “사실 가장 강력한 재발 방지책은 제도의 개선보다 일이 벌어졌을 때 당 지도부가 단호하고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인데 그런 모습이 아쉽다”고 말했다.
대의원제도 폐지 논쟁이 돈봉투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지렛대보다는 친명과 비명 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친다는 점도 문제다. 당의 사활이 걸린 가운데 본인 계파의 당내 입지를 늘리기 위해 이용해보려는 모양새가 국민적 시선에서는 달갑게 보일 리 없다.
그동안 친명계 의원들은 당원권 확대에 전방위적으로 힘을 쏟아왔다.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들이 대거 당에 유입돼 당원의 지위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비명계 중심의 현행 대의원제도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되지 않다는 판단에 당내 지형을 바꾸려는 정치적 셈법이다. 중앙당사 당원존 개설, 당원 청원게시판 신설 등이 대표적인 당원권 확대 사례다.
당내 일각에서는 무조건적인 당원권 확대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심에 전적으로 기댄 채 전당대회를 치른 여당이 민심과 괴리되면서 고전하는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야지 똑같은 실패의 절차를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의원제도가 폐지된 채 당원 중심으로만 당이 운영될 경우, 민심을 놓쳐 총선 참패를 겪을 수 있다는 적잖은 우려도 제기된다.
민주당 내부 관계자는 “대의원제도 폐지 주장은 당내 선거에서 매번 나온 얘기로 등가성 문제는 논의를 통해 조정하면 될 일이지만 반성과 자정 없이 대의원제도를 탓하는 모습은 오히려 민심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원 중심으로 당이 운영되는 것도 중요하나 결국 정당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으로 존립이 결정되기에 국민 의견 또한 가볍게 보면 안 된다. 국민을 생각하는 민생정당이라면 국민 목소리를 더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