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갤러리·바퀴벌레 밈…우울 삼킨 청년들

우울증 갤러리·바퀴벌레 밈…우울 삼킨 청년들

자살방조가 ‘장난’이라는 ‘우울증 갤러리’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부모에게 묻는 자식들
MZ세대 “아껴주는 느낌 받고 싶어”
이현숙 “다양한 관계 형성 부족…자존감 회복 중요”

기사승인 2023-05-07 06:05:05
그래픽=안소현 기자

청년들의 우울함이 온라인상에서 널리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MZ세대가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우울증 갤러리’에서는 최근 각종 범죄가 발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SNS에서는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바퀴벌레 밈’ 등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 갤러리 이용자 “‘자살방조’, 장난·진심 반으로 얘기해”

5일 쿠키뉴스는 우울증 갤러리를 10년 가까이 이용해 왔다는 이용자 A씨와 통화했다. A씨는 “갤러리 내에서 자살을 방조하는 내용, 자살을 권유하는 내용이 늘 올라왔었다”며 “실제로 갤러리 활동을 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이 10명 언저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그런 얘기들을 서로 한다. 그러다 보면 애초에 극단 선택을 염두에 두고 있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잃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우울증 갤러리 이용자들에게 ‘자살방조·권유’는 유희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울증 갤러리 이용자 중 한 명은 최근 자살방조죄·자살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앞서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우울증 갤러리를 이용하던 10대 B씨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우울증 갤러리에서 알게 된 20대 남성 C씨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만났지만 C씨는 떠났고, B씨 혼자 극단 선택을 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던 C씨를 공식 입건했다. 경찰은 C씨가 먼저 ‘동반 투신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리고 B씨와 접촉해 투신 직전까지 함께 있던 것으로 확인하고 구체적 자살 계획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A씨는 “원래 우울증 갤러리에서는 그러고 놀았다. ‘우울’을 전시하고 더 우울해지라고 강요하고 노는 게 일상이었다”고 전했다.

바퀴벌레=나?…“위로받고 싶은 마음”

이처럼 ‘우울’을 일종의 ‘놀이문화’로 삼는 분위기가 청년 사이에 만연한 가운데 ‘바퀴벌레 밈’도 등장했다. 이는 SNS에서 일부 사용자들이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냐”라는 질문을 부모에게 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4일 정오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바퀴벌레’ 해시태그 게시물은 약 1만 8000여건에 달한다. ‘바퀴벌레 챌린지’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실제로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쿠키뉴스와 만난 취업준비생(취준생) 이수민씨는 “내가 바퀴벌레가 돼도 ‘소중하다’는 말을 듣고 사랑을 느끼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 부닥쳐도 나를 아껴준다는, 그런 응원을 받고 싶다”고 바퀴벌레 질문 놀이를 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씨는 “요즘 ‘자기비하’로 스스로 상처 낼 때가 많다.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게 내 탓 같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꿋꿋해지려는 나름의 의지를 보이는 거라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고 이어령 박사는 “누구나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 즉 ‘버러지’로 여기는 순간을 경험하며 이때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가치를 복원한다”고 전한 바 있다. 청년들이 스스로 상처 내면서도 가족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 이면에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내재해 있다는 설명이다.

고용 안정성·일자리 질↓…불안한 청년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용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등 청년들이 미래를 예측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금 시대에서 청년들은 필연적으로 ‘우울’과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만 15~29살 청년 실업률은 6.7%다. 이는 1999년 6월 이래 역대 1분기 통계 중 가장 낮은 수치다.

하지만 일자리 질이 향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3월 근로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청년층 상용 근로자는 지난해보다 4만 5000명 감소했고, 계약 기간 1개월 이상~1년 미만인 청년 임시직·계약 기간 1개월 미만인 청년 일용직(13만 8000명)은 각각 약 1만여명씩 늘었다.

서울의 한 광고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김모씨는 “계약직으로 들어와 곧 계약이 만료되는데 정규직 전환 얘기가 없다”며 “또 일할 곳을 알아봐야 해 불안하다. 내 스펙이 너무 별로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자괴감이 든다”고 한탄했다.

이현숙 “자기 인정 욕구 충족 안 돼…행복지수 높여야”

전문가는 MZ세대 사이에서 ‘우울’이 유행이 된 이유에 대해 인정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라고 봤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4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저하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틀’에서 벗어난 사람이 자존감을 갖기 어려운 구조로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부모와 함께할 시간도 부족하고 형제·자매도 없어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그래서 온라인상에서 자기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니 우울증 갤러리 등에 찾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해당 욕구가 일상에서 충족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굉장히 낮은 편이다. 이를 어떻게 높일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차이가 아니라 다채로움,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고 그 자체를 인정하면 ‘나’라는 것이 존재 자체로 수용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관계와 자존감 회복을 위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도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소현 기자 ashrigh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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