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갑질’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이는 제약계에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대형 제약회사의 갑질로 영세 의료기기 납품업체가 도산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이 있었지만, 항소를 제기하면서 영세기업은 경영 정상화가 사실상 불투명해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명희 의원실에 따르면 의료기기 수입업체 B사는 지난 2018년 국내 대형 제약사인 A사와 일본 알프레사의 독감진단키트 ‘알소닉플루’ 독점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앞서 30만개 납품을 구두로 요구했으나 정작 발주는 25만개만 이뤄졌고, B사가 5만개 재고를 떠안았다.
B사는 납품 정식 계약에 한 달 앞선 지난 2018년 8월 A사 실무 담당자로부터 구두로 “알소닉플루 30만개를 주문할 것이니 물건을 준비해 달라”는 통지를 미리 했는데 태도를 바꿔 약속한 30만개가 아닌 25만개만을 발주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에도 비슷한 엇박자 납품 발주 사태가 이어졌다. 2019년 5월 양사 간 미팅 자리에서 A사는 구두로 ‘추석 전까지 각 병·의원에 알소닉플루를 공급할 수 있도록 여름휴가 전까지 최소 30만개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이에 B사는 해당 물량을 수입해 물류창고에 보관했다.
그러다 9월에서야 A사는 키트 20만개만 발주서를 넣었고, 약속한 30만개 발주는 없었다.
“왜 20만개만 발주하느냐”는 B사의 물음에 A사는 “8월에 심포지엄도 했으니 알소닉플루 판매량이 증대될 것이고, 올해부터 이것만 취급하기 때문에 추석 전후로 30만개를 다 가져가겠다”고 답했으나 이후 발주는 이뤄지지 않았다.
거듭되는 거짓 구두 약속에 2020년 영세기업 B사는 결국 큰 난관에 봉착했다.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면서 독감진단키트에 대한 수요가 급락한 까닭이다. 결국 떠안은 알소닉플루 재고 20만개는 창고에 그대로 쌓인 채 유통기한이 경과 폐기됐다.
갑질에 피해를 본 B사는 A사와의 협의에서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법정 다툼에 나섰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공정거래분쟁조정협의회에 제소해 일부 승소했으며 법원에서도 일부 승소했다.
하지만 A사는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B사를 상대로 공탁을 걸고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B사는 현재 도산 직전이다. 결국 대형 제약사의 갑질에 영세기업이 휘청이게 된 셈이다.
B사 관계자는 “A사와 독점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다른 회사와 사업을 할 수도 없어 사실상 부도와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현재까지 12억원 정도의 손해를 봤다”고 전했다.
이어 “조정원과 법원이 담당자 간 오고 간 문자나 메일, 통화 기록 등을 확인해 대형 제약사 A사의 부당함을 인정했음에도 서류로 작성된 게 없으니 ‘이유 없다’는 식으로 일관한다”고 말했다.
조명희 의원은 동반 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기업의 ‘두 얼굴’ 경영은 지양돼야 한다”면서 “협력을 기치로 내걸면서 실제론 갑질을 이어가는 행태는 우리 사회와 산업을 좀 먹는다”고 이번 사태를 진단했다.
그러면서 “A사는 최근까지 ESG 통합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획득한 바 있다. 지속가능한 내일을 지향하고 상생을 강조한다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동반 성장 시대에 발맞춰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능동적 노력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