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의원(무소속)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이 정치권의 ‘코인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게임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블록체인 시장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최악의 경우 P2E(Play To Earn) 게임의 규제 완화 논의가 원점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P2E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게임 플레이로 얻은 아이템 등을 가상자산(코인)이나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교환해 현금화가 가능한 모델을 말한다. 흔히 돈 버는 게임으로도 불린다.
일각에선 P2E를 ‘게임 혁명’으로 일컫는다. 기존 게임은 이용자가 게임 플레이를 통해 벌어들인 재화나 아이템 등이 게임사에 귀속되는 한계가 있는 반면, 이용자가 이를 온전히 소유해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2018년 P2E 게임 ‘엑시인피니티’가 동남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최근에는 국내 게임사들도 앞 다퉈 개발에 뛰어들었다.
다만 국내에선 P2E 게임이 불법이다. 현행 게임산업법 32조는 게임에서 획득한 점수, 경품, 게임머니 등 ‘유·무형의 결과물’을 환전 또는 환전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국내 게임사들은 제한된 형태로 글로벌 시장에서만 자사의 P2E 게임을 서비스해왔다.
김 의원이 보유하고, 수십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확인된 ‘위믹스’와 ‘마브렉스’ 등의 코인은 이러한 P2E 게임에 활용되는 게임사의 가상화폐다.
김 의원은 게임 머니를 가상화폐에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P2E 규제 완화에 앞장서왔다. 이로 인해 국내 게임업계와 정치권 간에 P2E 규제 완화를 위한 거래가 오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한국게임학회는 지난 10일 성명서를 내고 “몇 년 전부터 P2E 업체와 협회, 단체가 국회에 로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소문이 무성했다”면서 “국회 관련자가 위믹스를 보유했다면, ‘위믹스 이익공동체’에 가담한 셈이 된다”고 주장했다. 12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선거기간 중 여러 경로로 P2E 합법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하면서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위메이드 등 게임사는 로비 의혹에 “사실 무근”이라며 반발했지만, 논란이 확산할 경우 개별 게임사를 넘어 국내 블록체인 게임 전반에 부정적인 여론이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부터 P2E 게임 등 웹3 생태계에 대한 정부의 연구 계획 등이 속속 발표되며 규제 완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업계는 우려 중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P2E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 했던 데는 그간 업계가 확률형 아이템 등으로 돈 버는 데만 몰두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배경도 한 몫 했다”면서 “‘테라·루나’ 사태 이후 블록체인 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띠는 듯 했는데, 분위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숭실대학교 교수)은 “게임업계의 연루 여부를 떠나 이번 사태로 인해 P2E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진다면 규제 완화의 목소리가 쏙 들어갈 것”이라며 “업계로선 타격이 매우 클 것 같다. 게임산업의 성장을 저해한 ‘바다 이야기’ 사태가 혹여나 재현될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는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사안으로 인해 게임업계에 불필요한 불똥이 튀고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성명서를 낸 한국게임학회와 수장 위정현 교수를 겨냥해 “업계의 얼굴로서, 신중하게 대응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P2E 게임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기보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가 길게 이어지면서 유통량 논란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면서 “중소 게임사 위주로 P2E 게임 모델이 타당하고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를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하는 거다.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 주식시장에 준하는 가이드라인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P2E 게임을 지나치게 편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게임법은 사행성으로 시끄러웠던 바다 이야기 이후 제정됐다. 굉장히 낡은 규제”라면서 “정부가 몇 년 전부터 메타버스와 NFT를 미래 먹거리로 내세웠다. 메타버스와 NFT는 되고 블록체인 게임은 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바다 이야기의 악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 기술도 남의 이야기였다가 챗GPT가 일상에 스며들면서 인식이 뒤집혔다. P2E도 블록체인과 웹3로 향하는 과정의 일종의 시행착오 기술로 봐야한다”면서 “미국이나 유럽권에서 P2E 게임이 강력한 모습으로 서비스가 되기 시작하면 그때 쫓아가기엔 이미 늦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