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더 그립습니다. 노짱”
“별 면목이 없습니다, 노 대통령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평소 조용하고 한적했을 시골 마을은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발걸음으로 종일 북적였다. 노란색 모자나 옷 등을 걸친 이들부터 노란 바람개비를 든 이들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 아이템들로 봉하마을은 노란 물결이 가득 채워졌다.
인근 부산·경남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주최 측이 추산한 방문객 수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7000명을 훌쩍 넘겼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과거를 더욱 찾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날 추도식장을 찾은 특히 여느 해보다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강한 향수를 느꼈다.
매년 봉하마을을 찾는다는 대구 거주 50대 여성 김연숙씨는 올해 특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노짱 재임 시절에는 아이 셋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큰 관심을 못 뒀는데 돌아가신 후 그의 행적을 보고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었다는 생각에 매년 봉하마을을 찾는다”며 “2010년부터 몇 년간은 추도식 때 매번 비가 왔던 걸로 기억한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올해 추도식의 주제 문구인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가 시의적절했다고 봤다.
김씨는 “올해 주제 문구를 보는 순간 마음에 확 와 닿았다. 윤석열 정부 1년이 지났을 뿐인데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 같다”며 “그래도 잘못된 현실을 정확히 알고 추도식 주제로 정한 생각 있는 분들이 계시기에 느리지만 진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가장 민주적이었고 소탈했던 노짱이 특히 그리운 지금”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추도하기 위해 많은 여야 정치권 인사들도 이날 봉하마을을 찾았다. 대다수는 야권 인사들이었으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구자근 비서실장, 윤희석 대변인 등 여권 인사들도 자리했다. 정부 측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진복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근조화환을 보냈다.
추도사를 위해 무대에 오르는 한 총리를 향해서는 “꺼져라” “내려와라” 등등 거친 말들이 쏟아졌다. 심지어 욕설까지 나왔다.
한 추도객은 한 총리가 단상에 오르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이가 윤석열의 개가 됐다”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모습에 쓴소리는커녕 방관하고 있다”고 비토했다.
한 총리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4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날 쿠키뉴스가 만난 방문객들은 한결같이 모두 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퇴행 중이고, 이는 야당탄압에만 골몰하는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평가했다.
울산에서 봉하마을을 찾은 50대 남성은 “민주주의가 수호되길 바라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지금의 정치 현실을 보면 노 전 대통령 시절의 모습과는 너무나 반대”라며 “여야를 떠나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면 싸우더라도 민주주의의 가치는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부산에서 온 40대 한 여성은 “취임 1년이 넘도록 제1야당 대표와 만나지 않는 대통령이 과연 민의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겠느냐”며 “대통령이 먼저 야당 대표와 만나자면서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장을 찾은 정치인들은 수십여 명에 달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을 필두로 여야 당 대표와 국회의원 다수가 찾았다. 일부 의원들은 내빈석이 아닌 방문객 사이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추모 현장서 만난 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을 뵙기 위해 참석했지만, 마음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바라고 꿈꾸던 정치 현실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에 뵐 면목이 없다”고 짧게 말했다.
박주민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생각한 정치가 잘 구현되지 못해서 정치인으로 죄송한 마음이다. 더 열심히 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