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에서 한국 포털 사이트 접속이 제한되고 한국 연예인들의 출연이 예고 없이 취소되는 등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연달아 판호(판매 허가증)를 발급 받아 중국 진출 기대감을 드러냈던 국내 게임업계는 불안한 눈빛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 23일 수도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다수 지역에서는 네이버 접속이 되지 않거나 로딩 속도가 매우 느린 현상이 발생했다. 중국은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따른 한한령 이후 2018년 10월부터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등 일부 서비스 접속을 차단했는데, 이번엔 네이버 검색과 메일 서비스까지 막힌 것이다. 이에 대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가수 겸 배우인 정용화는 중국 내 최신 연예 프로그램인 ‘화이팅 신입생 1반’ 출연을 위해 지난 17일 베이징을 방문했지만 당국의 불허로 출연이 취소됐다. 베이징시 방송총국은 “외국 국적 연예인의 프로그램 촬영은 지방정부 심사 후 국가방송총국의 비준이 필수”라며 “정용화의 아이치이 프로그램 제작 신청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최근 급속히 냉각한 한중 관계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3국간 공조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여기에 G7 정상회의까지 참석하며 중국의 반발을 샀다. G7이 20일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대만·홍콩·신장·티베트와 동·남중국해 문제 등 중국이 ‘핵심 이익’이라 일컫는 사안과,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중국이 ‘괘씸죄’를 적용, 한한령을 강화하며 보복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對)중국 콘텐츠 산업 전반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게임업계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게임사들은 사드 배치 이후 중국 당국으로부터 수년간 판호를 발급 받지 못해 수출길이 끊겼다. 하지만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대거 판호가 발급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업계는 판호 발급 주기가 단축된 것,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게임들에게도 판호가 발급된 점 등에 주목해 장밋빛 관측을 쏟아낸 바 있다. 중국 게임 시장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넷마블과 넥슨게임즈, 스마일게이트, 데브시스터즈 등 국내 게임사들은 최근 중국 현지 퍼블리셔와 손잡고 중국 시장에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 기대감도 상당하다. 넥슨게임즈의 수집형 RPG 게임 블루아카이브는 사전 예약자 수만 2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흥행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하지만 한중 관계에 재차 먹구름이 끼면서 기껏 재개된 판호 발급이 잠정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발급된 판호가 취소되거나 출시가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2016년 판호를 발급 받아 중국 서비스를 준비하던 ‘던전앤파이터모바일(넥슨)’은 중국 유통을 담당하는 텐센트가 돌연 출시 연기를 알린 후 현재까지도 답보 상태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수년 만에 판호가 발급됐을 때도 중국 시장의 불안정성을 근거로 전망을 밝게 보는 관계자들이 많지 않았다. 3월에 판호가 대거 발급됐을 때도 한편에선 안심할 순 없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상황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불편한 한중 관계가 지속된다면 국내 게임업계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