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파스토’(Impasto). 그룹 라포엠 멤버 유채훈이 8일 발매한 두 번째 미니음반 제목은 유화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두텁게 만드는 기법을 가리키는 미술 용어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크러스오버 그룹 라포엠 멤버로 활동 중인 유채훈은 ‘여러 장르를 덧칠한다’는 의미로 이 단어를 음반 제목으로 썼다. 그러나 채색을 완성하는 건 유채훈이 아니다. 음반 발매를 반나절여 앞두고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음악은 내가 색깔을 덧칠해 만드는 것이지만, 듣는 사람의 이야기로 덧칠 당하기도 하는 것”이라며 “‘임파스토’가 (가수와 청중을 연결하는) 중재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첫 미니음반 ‘포디움’(Pordium) 이후 1년여 만에 내놓는 신보. 그 사이 유채훈은 라포엠 멤버들과 미니음반 한 장과 싱글 한 장을 내고, 전국을 돌며 공연을 열었다. 그는 “팀 활동을 소화하며 개인 음반을 준비하다 보니 3년간 쉴 틈 없이 일했다”고 돌아봤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던 ‘포디움’과 달리, 새 음반은 “전문가들이 해석한 유채훈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탐구하며 유채훈은 음악 세계를 넓혔다. 수록곡 ‘동행’이 대표적인 보기다. 그는 “처음엔 편곡이 소박해 심심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녹음을 마치니 이렇게 불러도 괜찮구나 싶었다”며 “지금의 제가 담긴 음반이라 빨리 팬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타이틀곡 ‘하얀 사막’은 라포엠 콘서트에서 여러 번 호흡을 맞췄던 작곡가 권지수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힘든 모래에 잠든 사막” 같은 세상에서도 “너라는 꿈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겠다고 다짐하는 희망가다. 유채훈은 “과몰입해서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고 귀띔했다. 다양하게 해석할 길을 열어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노래”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밖에도 음반에는 라포엠 멤버 정민성이 ‘최애곡’(가장 좋아하는 노래)으로 꼽은 ‘피시스’(Pieces), 이탈리아어로 가사를 쓴 ‘일 푸지티보’(Il Fuggitivo) 등 총 다섯 곡이 실렸다. 유채훈은 오는 17일과 18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단독 공연을 열고 신곡을 라이브로 들려줄 예정이다.
JTBC ‘팬텀싱어3’에서 ‘전설의 테너’로 불렸을 만큼 가창력이 뛰어나지만, 유채훈은 ‘뽐내는 노래’와 거리가 멀다. 대신 그는 “훗날 돌아봤을 때 다시 찾아 듣고 싶은 음악”을 추구한다. 팀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팬텀싱어3’ 결승전에서 “여백을 가득 남겨둔 노래”를 선곡했다가 우승에서 밀려날 위기에도 처했다. 그때마다 라포엠은 “순간에만 눈길을 끄는 노래는 부르지 말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훗날 다시 평가받을 수 있는 음악, 노래다운 노래를 부르자”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쉽지 않은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건 ‘평생 응원해줄 테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응원해주는 팬들 덕분이다. 유채훈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나를 좋아해 주실 수 있는지 신기하고 감사하다”며 “이런 팬들이 있기에 나는 나태해지거나 변질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너무 많아요. 한 번 부른 노래를 다른 무대에서 또 부르는 게 괴롭게 느껴질 정도로요. 기타리스트 박주원 형님은 제가 피곤하게 산대요.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요.(웃음) 하지만 새로운 노래를 외우고 익혀서 선보일 때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이 커요. 마지막을 생각하며 달리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라포엠 멤버들과 멋지게 나이 먹으면서 오랫동안 노래하고 싶습니다. 대스타가 되기보다는, 꾸준히 활동하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아티스트가 되는 게 꿈이에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