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엔테크’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일본 증시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반기 일본 주식 매수 건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부터 지난달 30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매수 건수는 4만4752건으로 지난해 상반기(2만6272건) 대비 70% 증가했다. 이는 2011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역대 최대치다.
월별로 보면 지난달 매수 건수가 1만4494건으로 집계돼 상반기 중 가장 높았으며, 5월에 기록한 직전 최대치인 7757건을 한 달 만에 경신했다.
매수 건수가 늘어나면서 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상반기 일본 주식을 순매수한 금액은 1억3200만달러(약 1741억원)로 작년 동기(1000만달러) 대비 1220% 증가했다. 2021년 상반기(3억4500만달러) 이후 약 2년 만의 최대 금액이다.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보관 금액 역시 약 31억300만달러(약 4조928억원)로 지난해 말(26억1100만달러)보다 18% 증가했다.
이같은 일본 주식 열풍의 원인은 ‘엔저현상’이 가장 크다. 지난 19일 오전 8시23분 기준 원·엔 환율은 100엔당 897.49원(하나은행 고시 매매기준율)으로 2015년 6월 이후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후 3일 기준 원·엔 환율은 900원대로 오른 후 횡보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식 이외에도 엔화와 관련된 ‘엔테크’ 열풍은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간단한 유형인 외화예금 상품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외화예금은 원화로 입금하면 통장에 외화로 환전돼 통장에 쌓이며 입출금이 자유롭다. 연계 증권사를 통해 일본 주식 거래를 할 수 있고, 최대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도 받을 수 있다. 시중은행들은 우대 환율 등을 제공하며 외화예금 유치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 ‘외화 체인지업 예금’, KB국민은행 ‘KB TWO테크 외화정기예금’, 우리은행 ‘외화보통예금’, 하나은행 ‘밀리언달러 통장’ 등이 있다.
다만 엔화 예금의 금리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점, 현금을 인출할 때마다 은행에 따라 1.5~2% 전후의 환전 수수료는 물론 15.2%의 이자소득세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은 단점이다.
증권 계좌를 통해서 엔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ETF는 특정 지수의 변동에 따라 가격이 변동하는 상품으로 국내 상장된 엔화 연계 상품으로는 ‘TIGER 일본엔선물 ETF’가 유일하다.
해당 상품은 엔·원 환율을 기초로 하는 ‘엔선물 지수’를 추종하는 것으로 최근 순자산 6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별도의 환전수수료가 발생하지 않고 주식처럼 소액으로 간편하게 매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엔테크 열풍이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부가 기록적 엔저에 대응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지난달 30일 “정부로서는 매우 높은 긴장감을 갖고 시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급속하고 일방적인 움직임도 보인다. 지나친 움직임이 있으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엔·달러 시장은 1달러 당 145엔대를 기록하며 7개월 사이 최저를 나타냈다. 이는 2022년 11월 10일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의 추가 약세가 수출경쟁력 강화 및 관광수요 확대 등을 통해 일본 경제에 단기적으로 긍정적일 수 있지만, 자칫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상회할 경우 향후 일본 경제와 금융시장에 부작용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엔·달러 환율이 145엔 수준을 상회하면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단행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엔화 약세 현상을 추세적으로 꺾을 수는 없지만, 지난해와 같인 단기 엔화 강세 재료로 작용하면서 엔·달러 환율은 130엔 중후반 수준까지는 하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