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은행이 지난해 2700억원 가량을 지자체‧병원‧학교에 금고 유치 대가로 건넨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지급한 막대한 협력사업비(출연금)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일 은행연합회가 발간한 ‘2022년 은행 사회공헌보고서’에 따르면 4대(KB국민‧신한‧하나‧우리) 은행이 지난해 지자체‧병원‧대학에 지급한 대가성 출연금은 총 2735억원으로 집계됐다. 대가성 출연금은 금고 유치 등 재산상 이익을 받고 출연한 자금을 말한다.
은행권은 금고를 유치할 경우 기관 금고를 유치한 데 따른 상징성과 함께 신용도 높은 기관 직원을 장기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은행간 수신 확보 경쟁이 치열할 때 금고 유치는 기관 자금을 저원가성 예금으로 대거 확보할 수 있어 은행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은행별로 지난해 출연금을 보면 신한은행이 1469억원으로 4대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를 보였다. 신한은행은 △지자체 1217억원 △병원 107억원 △학교 143억원을 출연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서울시 1‧2금고를 모두 맡아 운영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출연금을 보인 은행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자체 548억원 △병원 12억원 △학교 144억원 등 총 704억원을 출연급으로 지급했다. 뒤이어 KB국민은행이 △지자체 193억원 △병원 121억원 △학교 24억원 등 총 339억원, 하나은행은 △지자체 114억원 △병원 23억원 △대학 84억원 등 총 222억원의 출연금을 기록했다.
전국에서 지자체 금고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NH농협은행의 경우 기관별 출연금을 별도 공시하지 않았다. 올초 기준 농협은행은 전국 지자체 시금고 946개 중 552개(58.4%)를 확보하고 있다. 대신 NH농협은행은 ‘안정적인 농업인 교육지원사업’ 명목으로 3246억원을 출연했다는 내용만 공개했다.
확인 결과 3246억원 가운데 대다수는 지자체 등에 출연한 협력사업비로 파악됐다. 일각에서는 출연금 공개에 부담을 느낀 농협은행이 출연금 공개를 회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농업 지원에 특화된 특수 은행인 만큼 정체성 차원에서 지자체 출연금을 농업지원 항목으로 묶어 공시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출연한 자금은 지자체나 병원, 학교의 부족한 재정을 메우거나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활용된다. 하지만 은행이 특정 기관이나 단체에 혜택을 준 만큼 일반 소비자의 혜택이 줄어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출혈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정부는 2019년 3월 은행들의 무리한 출연 경쟁을 예방하기 위해 지자체 금고 선정시 출연금 배점을 낮추는 제도개선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은행간 금고 유치를 위한 무리한 경쟁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시중은행들이 막대한 출연금을 무기로 지방 병원, 학교 금고까지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올해 신한은행은 광주은행을 밀어내고 조선대 주거래은행을 차지했다. 이는 지역금융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지적까지 불러온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자체의 경우 무리한 출연금 경쟁을 막을 행안부의 지침이 있지만 학교 등의 경우 아무런 예방 장치가 없다”며 “이는 막대한 출연금으로 무장한 5대 은행의 과점체제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