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입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선임에 반대표를 행사한 국민연금은 이번에는 KB금융지주 차기회장 선임과 관련해 의결권 행사 검토에 들어갔다. 다만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번번이 선임안이 주총을 통과하면서 의결권 행사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를 통해 KB금융의 회장 선임 안건을 검토하기로 했다. KB금융은 1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양종희 부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KB금융의 지분 8.74%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안건에 대한 찬성과 반대 등 의결권 행사 여부를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경우 차기 회장 선임안에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KB금융의 추천 과정을 두고 문제 제기가 있었던 영향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차기 회장을 내정하는 과정을 보면 후보자군을 먼저 선정하고 회장 자격 요건을 정했다”면서 “누군가에게 유리한 자격을 적용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이 맞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입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현 정부 들어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결과는 ‘최대주주’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든다. 앞서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해당 건은 주총을 무리 없이 통과했다. 또한 2020년 국민연금이 반대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전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의 선임안도 주총을 그대로 통과했다.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또 다른 한 축인 사외이사 선임 문제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신한금융의 성재호, 이윤재 사외이사 재선임안과 하나금융의 김홍진, 허윤, 이정원 사외이사 선임안, 우리금융의 정찬형 사외이사 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사외이사 선임이 좌절된 곳은 없다.
실제 국민연금이 2020~2022년까지 216개 상장 기업 정기·임시 주총에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577건 중 부결로 결론지어진 건수는 24건(4.2%)에 불과하다. 특히 금융지주의 경우 해외지분율이 높고 우호지분이 많아 국민연금의 지분만으로는 안건의 방향을 뒤집기가 쉽지 않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기업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단순 문제 제기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을 불러오는 대목이다. 대안으로 기업 이사 등의 위법행위로 주식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음에도 기업이 책임 추궁을 게을리 할 경우 국민연금 수탁위를 대표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추진됐지만 재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반면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의결권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려운 만큼 의결권이 정치적 의도를 띄고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 합병 문제로 국민연금 의결권이 악용된 사례가 실제 있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 우려를 지울 수 없다”며 “국민연금의 결정이 실질적인 주주가치 제고와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