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CEO)가 9년 만에 변화를 맞이한다. KB금융지주가 새 회장으로 양종희 부회장 선임을 확정했다. 윤종규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는 양 회장 내정자는 당면한 정부와 정치권의 상생금융 압박을 해결하고, KB의 비금융‧디지털‧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KB금융은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양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의결했다. 양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의결권 총 수 중 80.87%, 출석 주식 수 중 97.52%의 찬성률을 보이며 주주들의 높은 지지 속에 가결됐다. 양 내정자는 사내이사 선임에 따라 오는 21일 비공개 취임식을 가지고 3년간의 임기에 들어간다.
양 내정자는 선임 직후 “국내 최고 리딩 그룹인 KB금융그룹의 대표이사 회장 후보로서 추천해 주시고 선임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금융산업의 여러 어려움 속에도 주주들이 KB금융그룹에 기대하는 것들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에 부응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중장기 자본 관리 방향과 주주 환원 정책에 적극 부응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양 내정자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인물이다. 지난 1989년 옛 주택은행에 입행, 합병 이후 국민은행의 영업점 및 재무 관련 부서 등에서 20여년간 근무한 행원 출신이다. 그는 행원출신이지만 비은행 전문성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다. 양 내정자는 LIG손해보험 인수를 이끌어 낸 주역으로 KB손해보험 대표를 2016년부터 5년간 맡으면서 KB손해보험의 순이익을 끌어올리고 그룹 핵심 계열사 반열에 올려놓는 토대를 다진 경력을 가지고 있다.
첫 시험대, 상생금융 압박과 리스크 관리
사내이사 선임에 따라 취임식만 남겨 놓고 있는 양 내정자가 풀어 나가야할 KB의 경영환경은 녹록치 않다. 먼저 정부와 정치권의 상생금융 압박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룹의 핵심사업인 은행을 두고 독과점 지적에 나섰으며, 정치권에서는 이자이익을 환수하기 위한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상생금융 압박의 배경은 대출금리 상승에 따라 국민의 부담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에 그는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다른 은행들과 연계해 국민의 부담을 덜어줄 효과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양 내정자의 첫 공식일정도 상생금융 문제다. 그는 오는 20일 금융위원장과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에 출석해 KB의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부진에 따른 신용 리스크 관리도 그가 놓칠 수 없는 과제다. KB금융의 전체여신 가운데 고정이하여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말 0.34%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6월말 0.44%를 넘어 9월말에는 0.48%까지 치솟았다. KB국민은행의 대출 연체율도 지난해말 0.16%에서 9월말 0.25%까지 상승한 상황이다.
여기에 연말 임기가 끝나는 계열사 11곳 중 9곳의 최고경영자(CEO) 인사와 내부통제 강화를 통한 그룹내 금융사고 예방도 그에게 주어진 당면한 과제다. 연말 CEO 임기가 끝나는 계열사는 KB국민은행(이재근 행장), KB증권(박정림·김성현 대표), KB손해보험(김기환 대표), KB국민카드(이창권 대표), KB자산운용(이현승 대표) 등 그룹의 주여 사업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앞서 양 내정자는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된 직후 “기업이 돈만 잘 벌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며 “주주와 고객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회적 책임 부분에도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첫번째 신용리스크와 연체 문제, 두 번째 회사 내 불법 행위, 세 번째 전환기에 나타날 수 있는 조직적인 위험 현상이 최대한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 비금융‧디지털‧글로벌 강화
KB금융의 주주와 고객, 직원들은 새로운 CEO가 한 단계 도약한 KB를 만들어 주길 기대하고 있다. 금융업의 한계를 넘어 금융과 비금융을 아우르고,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뻗어나가는 세계적인 KB금융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한 주주는 “저도 정말 재산을 늘리고 싶다”며 “양 후보자가 선임되면 KB를 크게 성장시키고 발전시켜 초대형 글로벌 IB로 만들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KB금융의 글로벌화는 윤종규 회장이 아쉬움을 남긴 부분이기도 하다. 윤 회장은 “우리나라 경제 규모로 봐서는 국내 리딩금융그룹이 적어도 세계 10위권에 들어가야 하는데, 여전히 60위권에 머물러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에 부코핀 은행을 정상화하고 인도네시아를 KB의 두 번째 핵심시장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양 내정자의 몫이 됐다.
아울러 선택이 아닌 필수가된 디지털전환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비금융 분야로의 사업 확장은 양 내정자가 임기 내내 추진해 나가야할 과제다. 양 내정자도 비금융 분야 사업 확장을 위해 “M&A 대상이 금융기관만이 아니라 비금융조차도 함께 갈 수 있는 금융그룹화를 고려하도록 하겠다”고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디지털전환에 대해서는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KB스타뱅킹이라는 은행의 대표적인 앱과 전국 최고의 서비스망, 대면채널과 비대면 채널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KB 내외부에서는 새 회장이 풀어 나가야할 과제가 산적하지만 양 내정자가 이를 잘 해쳐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B금융을 리딩금융으로 성장시킨 윤종규 회장은 이날 “양종희 회장 내정자는 그룹 전략의 연속성과 끊임없는 목표 추구를 위한 비전과 능력을 갖춘, 그야말로 준비된 리더”라며 KB금융이 새 회장을 맞이해 도약할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