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갇힌’ 고립·은둔 청년…정부 지원책 효과 거둘까

‘방 안에 갇힌’ 고립·은둔 청년…정부 지원책 효과 거둘까

기사승인 2023-12-14 06:00:28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 김지영(29·가명)씨는 디자인 회사에서 3년간 악착같이 버텼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불현듯 찾아온 공황장애는 그를 더 힘들게 했다. 사람과 마주 보며 대화하는 게 겁이 났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공포감에 휩싸였다. 상담이든 뭐든 받고 싶었지만 어떻게, 어느 곳에서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남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방 안에 가뒀다. 김씨는 “지금 너무 지쳐있다. 이대로 영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겁이 난다”며 “마음 놓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누군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업 실패와 대인관계 어려움 등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한 채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둔 청년이 최대 5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이들이 세상에 나와 사람과 교류하며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이 손을 잡고 방 밖을 나서길 바라는 마음이 모인다.

정부는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립한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만을 대상으로 전국 단위 실태조사를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중 ‘고립 청년’은 약 54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은둔 청년’은 24만명으로 추산된다. 고립 청년은 물리적·정서적으로 타인과 관계망이 단절됐거나, 외로움 등의 이유로 일정 기간 고립 상태에 놓인 청년을 말한다. 은둔 청년은 집안에서만 지내며 일정 기간 사회와 교류를 차단하고, 최근 한 달 내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청년을 일컫는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신체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불규칙한 식사를 하고, 밤낮이 바뀐 생활을 이어간다. 세상과 단절된 채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하며 나머지 시간엔 잠을 자면서 보낸다. 그렇게 외롭고 힘겨운 생활을 보내다 결국 자살 위험에 빠진다. 복지부가 지난 7~8월 스스로 고립·은둔 상태에 있다고 느끼는 2만1360명의 응답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이들 가운데 63.7%는 스스로의 정신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75.4%는 자살을 생각했고, 26.7%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는 크다. 고립·은둔 위험 상태인 1만2105명 중 80.8%가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하지만 실패를 경험했다. 67.2%는 탈고립·탈은둔을 시도한 적이 있고, 45.6%가 일상 복귀를 시도했다가 다시 고립·은둔에 빠졌다. 재고립 이유로는 외출할 돈과 시간이 부족(27.2%)하고, 힘들고 지쳐서(25%)라고 했다.

이에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들이 언제든 온라인 방식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원스톱 도움 창구’를 마련한다. 전담 사례관리사가 대인관계 회복을 돕는 ‘청년미래센터’(가칭)도 4개 광역시·도에 시범 설치해 운영한다.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부처는 취업 실패와 이직 등의 과정에서 쉬고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 성장 프로젝트’를 진행해 구직 활동을 지원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고립·은둔 청년들이 집 밖에서 나와 사회의 한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특히 실태조사에서 개인 정보를 공개하며 도움을 요청한 1903명에 대해선 즉각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2년간의 청년미래센터 시범사업을 통해 대상자의 정의, 정보 보호, 서비스 질 관리 방안, 전담 지원체계 확대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해 사업체계가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회 복귀에 실패해 다시 고립·은둔에 빠진 청년들에 대해서도 지원을 강화한다. 현수엽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탈고립·탈은둔 의지가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가족관계나 신체 건강을 조금씩 회복해 나간다면 탈고립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내년 청년미래센터 시범사업을 통해 재고립 청년에 더 특화된 지원이 있는지 검토하고, 이들의 가족을 돕기 위해 자조모임 같은 프로그램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아 정책적인 대응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방안이 나온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고립·은둔 청년들이 각자 처한 상황이 워낙 개별적이기 때문에 동일한 하나의 프로그램만으로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아래미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고립·은둔 청년에 대해 사회·정책적으로 대응이 미비했다. 청년들이 고립·은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게 시급하다”면서 “이들의 상황은 개인마다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똑같이 모두에게 적용한다면 성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청년미래센터가 이들을 다 포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별적 특성에 맞게 맞춤형 사례 관리를 통해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며 “지원 이후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방이다. 청년들이 고립·은둔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책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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