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내홍을 겪고 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지난 11일부터 7일간 회원들을 대상으로 총파업(집단휴진)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는 의협이 개표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두고도 잡음이 들끓자 의대 증원 반대 투쟁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섰던 최대집 전 회장이 사퇴하는 등 내부 갈등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의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는 지난 11일부터 회원 10만여명에게 차례대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전자투표 방식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시작했다. 투표 마지막 날인 오는 17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등에 반대하는 전국의사 총궐기 대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의협은 총파업 찬반 투표 결과를 회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전면 비공개하기로 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할 경우에 대비해 협상 카드로 쓰겠단 전략이다. 일선 의료현장의 혼란과 환자 피해도 고려됐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정부와 협의를 통해 의대 정원 확대 등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정부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할 경우 의료계는 파업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파업 여부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혼란을 겪고 환자들이 불안해할 수 있기 때문에 투표 결과가 나오면 바로 발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의협 회원들의 의견을 일단 수렴해놓고 파업밖에 답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투표 결과를 공개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범대위가 독단적으로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제35대 의협 회장을 지낸 주수호 전 회장이 대표로 있는 미래의료포럼은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투표 결과도 공개하지 않고 오직 범대위원장인 이필수 의협 회장만 결과를 알 수 있으며, 의협 회원들조차 투표 결과를 알 수가 없다고 한다”며 “범대위는 해괴망측한 투표를 지금 당장 중단하고, 만약 투표를 강행한다면 그 결과를 반드시 전 회원에게 공개할 것을 약속하라”고 주장했다.
미래의료포럼은 범대위 구성을 놓고서도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최대집 전 회장이 범대위 투쟁위원장 직을 맡은 데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최 전 회장은 지난 2020년 의료계 총파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미래의료포럼은 “집행부 산하의 비대위를 해산하고 전체 의사를 아우르는 독립적인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비판해왔다.
최 전 회장의 거취를 두고 내부 논란이 일자 그는 14일 범대위 투쟁위원장에서 전격 사퇴했다. 그는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를 통해 “의협 범대위 투쟁위원장 직의 사임을 표한다”는 짧은 입장을 전했다.
내홍이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자 이를 경계하는 내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의협 관계자는 “의료계가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비춰지는 것이 오히려 정부와의 협상에 있어 불리하게 적용할 수 있다”며 “파업이라는 단어 선택과 함께 파업 여부와 방식을 결정할 때 더 신중을 기해야 될 것 같다”고 짚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많다지만 의협이 총파업을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함께 정치권의 압박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할 일은 총파업 결의를 다질 게 아니라, 필수·지역의료를 살릴 지혜를 모을 때”라며 “국민 건강과 대한민국 미래를 생각해 총파업을 철회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의협이 총파업 투표를 실시하기 하루 전날인 10일 정부는 보건의료 재난 위기 경보 ‘관심’ 단계를 발령했다. 보건의료 위기 관심 단계는 ‘보건의료 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라 보건의료 관련 단체의 파업·휴진 등에 대비해 상황을 관리하고, 진료대책 점검과 유관기관 협조체계 등을 구축하는 단계다. 보건의료 재난 위기 경보 단계는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로 나뉜다. 이날 복지부는 “의료계와 대화를 충실하게 이어가되,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