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의대생을 10년간 의료 취약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제’가 국회에서 7부 능선을 넘은 가운데 의료계나 정부에선 ‘섣부른 결정’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의료계 총파업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진다.
지난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역 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 제정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지역의사제 법안의 골자는 의대 정원 일부를 별도로 선발한 뒤 해당 인원을 10년간 지역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하는 것이다. 복무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대학 때 받은 장학금을 반환해야 하고, 의사 면허도 취소된다. 의사뿐만 아니라 치과의사, 한의사가 대상에 포함된다. 선발전형은 의대가 있는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자를 대통령령을 통해 정하는 비율 이상으로 선발하도록 한다.
의료계는 법안의 통과 소식에 즉각 불편함을 드러냈다. 의료계는 지역의사제가 의대생의 직업 선택권과 의사 이동권을 제한해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의사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이 사회적 논의나 합의 없이 지역의사제 도입법과 공공의대 설립법을 강행 처리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향후 발생할 모든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민주당에 있다”고 했다.
전라남도의사회도 “해당 법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 행복 추구권 등 많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법안 폐기를 요구했고, 미래의료포럼은 “의사 인력 수급 정책의 구조적 문제와 지역 공공·민간의료기관의 열악한 환경부터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이번 법안 통과가 달갑지만은 않다.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의료계와의 타협점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17일 대한의사협회는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를 열어 의대 증원 반대 총파업을 예고하기도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0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2025년 이후 의대 입학 정원 규모가 구체화되지 않은 가운데 지역의사 선발을 정하도록 하는 일은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역의사제는 의사 인력 부족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의사 인력을 어떻게 정의할지, 10년간의 복무기간은 적절한지, 전공의 수련 과목 제한 등 쟁점이 많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지역의사제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이어 본회의까지 통과해야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여당이 해당 법안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어 법안 통과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더불어 법제사법위에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의료계 총파업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020년 의사 총파업에 불씨를 지핀 것이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이기 때문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은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의료계의 결사적 총파업을 유발함으로써 정부 여당에게 더 큰 부담과 어려움을 지우려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