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사망한 이선균은 20년 넘게 활동하며 숱한 히트작을 남긴 배우였다. 2001년 MBC ‘연인들’로 데뷔해 짧지 않은 무명 시절을 보냈으나 MBC ‘하얀거탑’ ‘파스타’ ‘골든 타임’을 흥행시켰다. 2019년엔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을 들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도 밟았다. 그러나 이런 영광도 지난 10월 불거진 마약 투약 의혹으로 빛이 바랬다. 항간에선 경찰 수사 과정이 언론에 과도하게 유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과 소방당국을 종합하면 이선균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종로구 한 공원 인근에 주차된 차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소방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선균과 연락이 닿지 않자 거주지를 찾아갔던 매니저가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를 발견한 뒤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선균은 코미디와 정극을 오가는 배우였다. TV 데뷔작은 시트콤이었으나 오랜 연인과 권태기를 겪는 수영선수(MBC ‘태릉선수촌’), 신념이 확고한 내과의사(‘하얀거탑’) 등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커피프린스 1호점’과 ‘파스타’ 등에서 보여준 로맨스 연기도 탁월했다. 2018년 선보인 tvN ‘나의 아저씨’로는 ‘진정한 어른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7.4%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했다.
영화계에서도 굵은 획을 그었다. ‘기생충’ 덕분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이 작품에서 이선균은 글로벌 IT기업 CEO 박동익을 연기했다. 그는 이 영화로 미국 배우조합상 영화부문 앙상블상을 손에 넣었다. 지난해 개봉한 ‘잠’(감독 유재선)을 들고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도 다녀왔다. 이밖에 ‘화차’(감독 변영주), ‘끝까지 간다’(감독 김성훈), ‘내 아내의 모든 것’(감독 민규동), ‘옥희의 영화’(감독 홍상수) 등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흡수했다.
이선균은 커리어 정점에서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돼 대중에게 충격을 안겼다. 칸 영화제 진출작인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감독 김태곤)와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는 공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출연 예정이던 드라마 ‘노 웨이 아웃’에서도 하차했다. 이선균은 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으며 ‘마약인 줄 몰랐다’는 취지로 주장해왔다. 전날 법률대리인을 통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의뢰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경찰의 간이 시약 검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에선 마약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 수사 내용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며 여론 재판이 벌어졌다. 전날에도 이선균이 경찰에 출석해 진술한 내용이 JTBC를 통해 보도됐다. ‘이선균이 최소 5차례 마약을 투약했다’고 진술한 유흥업소 실장과 이선균의 통화 내용도 세간에 알려졌다. 이선균과 함께 조사받다가 최근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가수 지드래곤 역시 ‘온몸을 제모했다’는 둥 오보와 추측성 보도로 몸살을 앓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실시간으로 전하는 것은 과하다”며 “제기된 혐의와 별개로 인격을 사살하는 수준의 여론 형성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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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