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감정, 영화로 기억해요”…자폐 청소년, 세상과 만나다 [쿠키인터뷰]

“몰랐던 감정, 영화로 기억해요”…자폐 청소년, 세상과 만나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4-01-14 06:00:02
그림작가 김익환 군이 11일 서울 종로구 서촌갤러리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많은 분이 제 일력을 넘겨주시는 순간, 제 삶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돼요. 제 그림을 좋아해 주시면 작가로서 너무 행복하고 뿌듯해요.”

말투에 자신감이 넘쳤다. 오랜만에 하는 인터뷰라 긴장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직접 그린 영화 포스터와 명대사를 적은 일력(日曆)인 ‘하루치 용기를 충전하는 긍정의 말들’을 출간한 그림작가 김익환(16)군은 최근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는 것에 대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갤러리B에선 김군이 그린 영화 포스터와 먹그림 전시회 ‘부서진 마음에 다시 용기를’이 열리고 있었다. 갤러리엔 한 뼘 길이의 엽서에 그려진 포스터와 여백의 미가 강조된 먹그림들이 관람객을 맞았다. 엽서를 시작으로 이면지, 캔버스 등에 약 2만장 가까이 먹그림 중 고른 작품들이었다. 이미 누군가에게 팔린 작품 옆에 붙여진 별표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이날 갤러리에서 만난 김군은 명함을 주면서 QR코드를 스캔하면 자신의 SNS로 연결된다고 소개했다. 입구 쪽에 걸린 먹그림은 의수 화가 석창우씨가 지난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폐막식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에 영향을 받아 그리기 시작한 그림들이었다. 전시장 안쪽엔 대표작인 영화 포스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김군은 영화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기록 그 이상의 의미라고 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그에게 영화는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다. 영화에 빠지기 전엔 일방향 소통만 가능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대화하는 방법을 익히며 세상과 마주하는 방법을 배웠다. 김군은 “늘 영화를 보며 감정을 기억하고 영감을 떠올려요”라며 “포스터를 그대로 따라 그릴 때도 있지만, 상상한 장면을 창작해서 그릴 때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재밌게 본 영화에서 그리고 싶은 장면과 색을 구상하고 느낌 가는 대로 따라 그리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영화를 즐겨본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만 해도 밀폐된 공간인 영화관이 힘들고 무서웠다. 오감이 예민해 한꺼번에 쏟아지는 자극을 견디기 힘들었다. 부모님은 김군에게 안대를 씌우고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가 시작한 뒤 안대를 벗기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여줬다.

김군에게 용기를 준 건 친구였다. 김군은 “처음엔 영화 보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을 계속 거절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일단 가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나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본 영화가 2016년에 개봉한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드림 쏭(Rock Dog)’(감독 가스 애쉬 브래넌)이었다. 김군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몰입했다”며 “그 뒤로 TV에서 해주는 영화 예고편이 있으면 무조건 보러 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영화에 빠진 김군은 1년에 30회 이상 영화관에 간다. TV와 OTT 등으로 보는 영화까지 합치면 매년 보는 영화만 100편 이상이다.

그림작가 김익환 군이 11일 서울 종로구 서촌갤러리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그는 “2019년 개봉한 영화 ‘내안의 그놈’(감독 강효진) 포스터를 캔버스에 그린 적이 있는데, 큰 칭찬을 받았다”며 “내가 그렸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 그렸다”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전했다. 또 한 관객에게 “실력이 올라왔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작가로서의 성장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림과 색에 대한 철학은 확고했다. 미(美)에 대한 본인만의 가치관이 뚜렷했다. 김군은 “색이 있다고 빈 곳을 다 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색을 채워서 예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은 그냥 하얗게 둔다”고 설명했다. 사람의 눈동자를 까맣게 칠하지 않는 것 역시 김군만의 스타일이다. 그는 “눈알을 까맣게 그리면 왜인지 못생긴 거 같다”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눈알을 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군이 꿈꾸는 미래는 아주 구체적이다. 전 세계에서 전시를 열면서 많은 관객과 소통하는 그림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었다. 그는 “전국 투어랑 월드 투어도 하고 싶어요”라며 “첫 월드투어 장소는 도쿄로 정했다. 아시아부터 시작해 천천히 유럽과 아메리카로 나아가고 싶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영화가 아닌 새로운 분야와 장르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동물의 감정을 먹그림에 담아내고 싶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해 다양한 다큐멘터리도 봤다”라며 “‘라이온 킹’ 실사 영화를 보고 난 후, 동물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에고했다. 

김익환군의 전시는 오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B에서 열린다. 김군은 갤러리에서 방문객을 직접 맞으며 소통할 예정이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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