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홍콩H지수(항셍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기준안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높은 수준의 피해 보상을 원하고 있어, 결국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르면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중으로 홍콩H지수 배상 비율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4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이달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 손실을 배분하는 분쟁 배상안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금융당국은 지난달부터 국민, 신한, 하나, 농협, SC은행 등 5개 은행과 한국투자, 미래에셋, 삼성, KB, NH투자, 키움, 신한투자를 비롯한 증권사 7곳을 대상으로 1차 현장검사를 진행했다. 지난 16일부터는 2차 검사에 돌입했다.
금감원은 홍콩H지수 ELS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1차 검사에서 은행들이 고령층 노후 보장용 자금이나 암보험금에 대해 투자를 권유하거나, 증권사 창구에서 행해지는 설명 녹취 의무를 피하고자 휴대전화로 온라인 판매를 한 것처럼 가입하도록 하는 등의 불완전판매 사례를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피해자들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부분은 기본 배상 비율이다. 유사한 선례인 2019년 DLF 사태를 보면, 당시 금융당국은 DLF 상품 손실액 기본 배상 비율을 55%로 설정했다. 투자자 성향을 조사해 그에 맞는 상품을 권유하는 ‘적합성 원칙’ 위반 시 30%, 은행 내부 통제가 부실했다면 20%, 초고위험 상품 특성을 고려해 다시 5%가 붙으면서 55%라는 기본 배상 비율이 정해졌다.
하지만 이번 건은 DLF보다 기본 배상 비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부통제 문제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2020년부터 시행되면서 은행들도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서 “사안들이 워낙 개별적이고 직원 개인 일탈 문제로 보여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내부통제 문제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은행 자체 조사를 통해 불완전판매가 입증된 사안에 대해서만 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 배상 비율을 40% 내외가 될 것으로 봤다.
관계자는 “DLF는 사모펀드이고 굉장히 상품 구조가 복잡했다. 하지만 ELS는 공모펀드이기 때문에 투자설명서도 있고 상품 구조도 상대적으로 쉽다. 오랫동안 판매해왔던 상품이기도 하다”면서 “치매환자에게 판매한 사례 등 명백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금융당국이 모든 사례들에 대해서 금융사에 일괄배상하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은행들도 반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법적으로 보면 배상비율이 이전보다 낮을 수밖에 없고, DLF나 라임 등 선례도 있어서 배상기준안 마련이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 총선이라는 변수 때문에 금감원에서도 많이 고민을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면 금융사에 더 책임을 높게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DLF 사태 이후 금융위원회는 원금이 20~30% 손실이 날 수 있는 고난도 사모펀드에 대해 은행 판매를 금지했다. 당시 ELS는 허용할지가 쟁점이었는데 은행이 수익 저하를 우려하며 허용을 요청했고, 당국은 당시 판매 원칙 강화 등을 조건부로 허용했다”면서 “은행이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가중책임을 묻는 의미에서 배상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이 100% 배상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배상안이 나오든, 결국 소송전으로 갈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콩H지수ELS피해자모임’은 은행이 ELS를 판매한 것 자체가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100%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금감원은 홍콩H지수 ELS 가입자에 대한 배상 기준을 금감원이 만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자 “금융 분쟁 조정은 금감원 고유 업무”라며 이를 정면 반박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은행, 증권사 권역별로 신속하게 배상기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