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에게 제시한 복귀 시한 당일인 29일, 환자를 등지고 떠난 전공의들 대다수가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부는 예고한 대로 이들의 면허를 정지하는 등 사법절차를 이행할 방침이다. 동시에 이날 계약이 종료되는 전임의까지 이탈하면 의료현장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29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약 1만명에 가까운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했지만 복귀자는 294명에 불과하다. 1명 이상 복귀한 병원은 32개소, 10명 이상 복귀한 병원은 10개소이며 최대 66명이 복귀한 병원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환자 상태 확인, 병원 단순 방문 등의 사례가 병원 복귀로 집계됐을 가능성도 있다.
전공의 10명 중 7명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8일 오후 7시 기준 100개 수련병원 점검 결과, 사직서 제출자는 소속 전공의의 약 80.2% 수준인 9997명, 근무지 이탈자는 소속 전공의의 약 72.8%인 9076명으로 조사됐다. 복지부는 전날 57개 수련병원 점검에서 복귀가 확인되지 않은 전공의 5976명에게 ‘불이행 확인서’를 발부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의 복귀 시한을 29일로 정했다. 이날까지 돌아오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지만 다음달부터는 원칙대로 행정·사법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중대본 정례브리핑에서 “환자 곁으로 돌아온 전공의들이 있어 다행”이라며 “환자 곁으로 돌아오는 건 패배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라며 전공의들의 복귀를 촉구했다.
이날은 의료현장에 남아 있던 전국 병원 4년차 전공의마저 수년간의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는 날이기도 하다. 이들은 전공의 집단 사직에도 졸국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해 병원에 남았다. ‘졸국’이란 의국을 졸업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일부는 졸국 후에도 수련병원에 전임의(펠로우) 과정을 위해 남는다. 전임의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수련병원에서 임상의사 혹은 연구자로 근무를 이어나가며 세부전공을 수련하는 의사다.
전공의 이탈 장기화에 이어 전임의 신규 계약기간도 만료됨에 따라 의료진 추가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심화가 우려된다. 통상 전임의는 2월 말에 재계약을 맺고 근무한다. 82개 수련병원 전임의와 임상강사들은 “의료 정책에 대한 진심 어린 제언이 모두 묵살되고 국민들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상태에선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며 재계약 거부를 시사한 바 있다.
정부는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까지 병원을 떠나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응책은 없다. 박 차관은 전임의, 임상강사들의 임용 포기와 계약 거부 등에 대해서 “병원 자체 판단에 의해 진행할 문제”라며 “이 부분에 대해선 별도로 추가적인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전공의들이 끝까지 복귀하지 않아 면허가 정지된 후 추가적인 제재 방안에 대해선 “법을 위반한 정도 만큼만 정확하게 처분하는 것이 법의 원칙”이라며 “조속히 본래 자리로 돌아와 환자 진료가 원활히 이뤄지는 게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합당한 방향”이라고 전했다.
남은 의료진도 신음…“그저 기다릴 수밖에”
전공의, 전임의까지 다 떠나면 남은 의료진의 어려움은 극에 달할 전망이다. 의료현장 곳곳에선 신음이 터져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대학병원 신경과 A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수술 분야 의료진이 아니라서 환자 진료가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경우는 없다”면서도 “가장 최전선에서 일하는 전공의 선생님들이 빠진 상태라 모든 교수진이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년을 앞둔 교수님들까지 야간 당직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라 파업 기간이 길어지면 체력의 한계가 올 테고 그로 인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교수들은 기성세대로서 그들이 방향을 우선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말릴 수도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내분비대사내과 B교수도 현 상황이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B교수는 “우리 병원도 전공의가 없어서 진료보조인력(PA)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교수들이 야간 당직을 서고 있다”며 “전공의들은 돌아올 생각이 거의 없는 것 같고 그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탄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전문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역 2차병원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수도권 종합병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종합병원들은 여력이 충분하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무조건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종합병원급에서 해결이 안 되는 환자는 상급병원으로 빨리 전원해야 하는데, 공백이 더 커지면 응급·중증 환자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병원장들은 전공의들이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 송정한 분당서울대병원장은 지난 28일 소속 전공의 전원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전공의 여러분의 꿈과 희망은 환자 곁에 있을 때 빛을 발하고 더욱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믿고 있다”며 “병원장 일동은 전공의 여러분께 약속드린다. 대한민국의 왜곡된 필수 의료를 여러분과 함께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호소했다.
환자들의 불편과 고통은 극에 달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참여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는 사직 방식의 집단행동을 멈추고, 응급·중증환자에게 돌아와 이들이 겪는 불편과 피해, 불안부터 멈추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이 발생한 지 10여일 만인 이날 처음으로 전공의들과 만나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참여한 전공의는 극히 일부에 그쳤다. 마지막 ‘복귀문’이 닫힐 때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환자도, 남은 의료진도, 국민도, 정부도 한목소리로 말한다. “돌아와 달라”고.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