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의료공백이 커짐에 따라 환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출산일에 맞춰 예약한 병원에서 분만이 어렵겠다고 통보를 받는가 하면, 예정됐던 종양제거술이 갑자기 연기되는 사례가 잇따른다. 환자단체 등이 의료진의 현장 복귀를 촉구하는 가운데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고,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해선 법적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4일 정부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사태가 발생한 이후 환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 접수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달 19일부터 29일까지 총 781건의 환자 불편 사례가 보고됐다. 구체적으로 수술 지연이 256건, 진료 거절 33건, 진료 취소 39건, 입원 지연은 15건 발생했다. 의료이용 불편상담이 349건, 법률상담지원은 89건 이어졌다.
전공의의 의료현장 이탈 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 별도로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13건이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두 달 이상 대기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거나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입원 일정이 연기됐다는 사례 등이 있었다. 식도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돼 지난달 말 종양제거술을 앞두고 있던 A씨의 경우 수술 일정이 갑자기 연기됐다. A씨는 “조마조마하게 입원 날짜를 기다렸는데, 결국 연기 통보를 받았다”며 “제때 수술을 못 받아 예후가 나빠지면 누구 탓을 해야 하나”라고 토로했다.
환자들의 불안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아버지의 오른쪽 폐에 종괴가 생겨 최근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진료를 예약했던 B씨는 진료가 4월로 밀렸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B씨는 폐암 환우회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며 “다른 대학병원도 비슷한 상황이라 정상화되길 바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달 말 출산을 앞둔 C씨는 “출산 예정일에 맞춰 분만 일정을 잡았는데, 마취가 불가능할 수 있어 다른 병원으로 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산부인과 질환이 있어 응급 상황이 생길지 몰라 일부러 대학병원을 선택했는데 황당하다”고 하소연했다.
삼중음성유방암 환우회인 우리두리구슬하나의 이두리 대표는 “수술을 앞둔 암 환자들이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거나 수술을 미뤄야 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면서 “암은 생사가 달린 일이라 환자들이 예민해져 가고 있는데 정부나 의료계의 대처는 너무 미흡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도 “소아 심장 수술 역시 연기되는 사례가 발생한다”며 “심장 이식이나 단락술 같은 1차 수술 또는 심부전 환아 수술마저 뒤로 연기돼 피해가 커질까봐 우려된다”고 짚었다.
환자·시민단체는 전공의들의 신속한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의 권한을 남용해 중증환자와 응급환자에게 불편을 넘어 불안과 피해를 주면서까지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변명이 될 수 없다”며 “전공의는 사직 방식의 집단행동을 멈추고 환자에게 돌아와 이들이 겪고 있는 불편과 피해, 불안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는 지난달 21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와 ‘빅5’ 병원(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의료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가톨릭서울성모병원) 전공의 6000여명을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서민위는 “의대 증원을 전공의 밥그릇을 뺏는 일로 보지 말고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주시길 전공의들에게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한편 정부는 지역별 비상진료체계를 수립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대형병원 응급실은 중증응급환자들이 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이송 지침을 적용하고, 응급상황에서 필요한 신속한 전원을 위해 광역응급상황실 4개소를 이달부터 조기 가동한다. 공공병원은 진료시간을 확대하고, 민간병원으로부터 환자를 받아 수술 등을 진행한다. 전국 12곳의 국군병원 응급실도 민간에 개방된 상태다. 정부는 수련병원에 대한 현장점검을 병행한다.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해선 법적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4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종교단체와 환자단체, 장애인단체, 경영계·노동계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집단행동을 즉시 멈춰달라고 간곡히 당부했음에도 전공의들이 이를 끝내 외면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오늘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계획인 만큼 전공의들은 의료현장으로 조속히 복귀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