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한 빌라 전세 계약을 맺은 이모씨는 불안함을 호소했습니다. 은행 직원이 화곡동에서 한 집 걸러 한 집이 전세 사기 피해를 봤다고 조언했기 때문입니다. 1억원 전세 대출을 이용 예정인 이씨는 혹여나 공인중개사가 전세 사기 위험이 있는 매물을 소개했을까봐 두려워진 것입니다.
공인중개사들이 전세 사기에 가담한 사실이 알려지며 세입자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경기 수원시 일대에서 무자본 갭투자로 225억원 규모의 전세 사기 행각을 벌인 정씨 일가 사건에서도 공인중개사들의 불법행위가 적발됐습니다. 경기도는 국토교통부, 시군과 합동으로 조사한 결과, 정씨 일가 관련 전세 사기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되는 41개 공인중개소를 적발했습니다. 이외에도 공인중개사 450개소 중 22%에 달하는 99개소에서 불법행위 139건이 드러났습니다.
공인중개사들이 전세 사기에 가담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정보 누락입니다. 부동산값 하락으로 인해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와 비슷하거나 높아질 수 있는 역전세, 깡통전세 등에 대해 미리 고지를 하지 않고 계약을 성사시킨 후 성과금을 챙기는 방식입니다. 실제 정씨 일가 전세 사기에 가담한 한 공인중개사는 “‘깡통전세’(부동산값 하락으로 전세 보증금이 주택가격보다 높은 경우)가 될 줄 알면서도 고액 성과보수를 챙겼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건물 근저당권 설정 사항을 거짓으로 설명하는 방식 등으로 피해를 키운 사례도 있습니다.
정식 공인중개사가 아닌 ‘실장’, ‘소장’ 같은 직급을 가진 중개보조원들의 불법 계약 체결도 존재합니다. 2022년 수도권 일대에서 빌라 1139채를 소유하다 돌연 사망한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자 중 일부도 중개보조원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분양 실장과 계약했다는 박모씨는 “이사비 지원에 대줄 절차까지 소개받아 계약했으나 2억3000만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 한 채 집주인이 사망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박씨는 정식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 보조인과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사실을 전세 사기를 당한 뒤에야 알게된 것 입니다.
정부는 공인중개사들의 전세 사기 가담 행위를 제지하고 나섰습니다. 정부는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공인중개사법’과 ‘교통안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개정안은 중개대상물에 대한 공인중개사의 확인과 설명 의무를 강화하고자 마련됐습니다. 앞으로 공인중개사는 안전한 임대차 계약 중개를 위해 선순위 권리관계(임대인의 미납세금, 확정일자 부여 현황, 전입세대)와 임차인 보호제도(소액 임차인 보호를 위한 최우선변제권, 민간임대주택의 임대보증금 보증제도) 등을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도 작성·서명해 거래 당사자에게 교부해야 합니다. 해당 개정안은 3개월 후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공인중개사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세입자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부동산 공인중개소를 방문하기 전 정식 공인중개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홈페이지에서는 개업공인중개사를 검색해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에 위치한 공인중개소를 이용할 경우, 애플리케이션 ‘서울지갑’을 통해 모바일로 공인중개사의 자격, 소속, 중개보조원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전문가는 최대한 전세 계약 시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 전세피해센터 관계자는 “대규모 전세 사기 이후 피해가 발생 우려에 대한 상담도 늘고있다”라며 “요즘 같은 시기에는 전세계약을 보수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가격이 지나치게 높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중개인, 보조인은 피해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