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아이돌, 문재인 사냥개, 철부지 정치초년생, 나 홀로 셀카·대권놀이, 주군에게 대든 폐세자,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
‘보수 원로’ 홍준표 대구시장의 독설이 거세지고 있다. 타깃은 4·10 총선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한 전 위원장이 5000만 국민 문법을 표방하며 등판할 때만 해도 여권엔 기대감이 컸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탔고, 신선한 화법에 유권자들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한동훈 효과’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기류가 감지됐고, 결국 국민의힘은 참담한 총선 성적표를 받았다. 홍 시장은 주범으로 한 전 위원장을 지목하고 있다. 쿠키뉴스는 홍 시장의 발언을 통해 국민의힘의 총선 참패 원인을 살폈다.
홍 시장은 4·10 총선을 목전에 앞둔 시기부터 한 전 위원장의 선거 지휘 방식을 비판해왔다. 시작은 지난 4월2일이었다. 홍 시장은 한 전 위원장을 향해 “대선놀이 하지 마시고, 총선에 집중하라”며 “‘셀카’ 찍는 시간에 국민들에게 담대한 메시지나 던지라. 셀카 쇼만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홍 시장의 지적처럼, 한 전 위원장의 총선 유세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셀카’를 꼽는 이가 많다. 그는 주위에 모인 당원, 지지자들을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스킨십형 유세를 펼쳐왔다. 문제는 “셀카 말고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는 평가다. 뒤집어 말하면 구체적인 총선 전략이 부재했다는 의미로, 뼈아픈 대목이다.
홍 시장은 지난 4월3일에도 “셀카나 찍으면서 대권놀이나 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서 참다 참다 못해 충고한 것”이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총선 2년 전부터 치밀하게 선거 준비를 해서 수도권 압승을 이끌었다. 제발 남은 기간만이라도 남 탓하지 말고 지역구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읍소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홍 시장의 조언은 끝내 통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총선 기간 내내 한 전 위원장으로 시작해 한 전 위원장으로 끝나는 ‘원맨쇼’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이해찬·김부겸 3인 선대위 체제와 함께 민주당 주도 범야권 비례 위성정당을 구성해 외연확장에 나선 점과 대조적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수도권과 청년 표심을 위한 ‘유승민 역할론’이 제기됐지만, 한 전 위원장은 ‘원톱 체제’를 고수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치 신인’ 한 전 위원장의 독주에만 의존한 당의 총선전략은 곧 한계를 부딪혔다. 당장 대야 공세를 뒷받침할 스피커부터 부족했다. 유세 현장에 나간 한 전 위원장 홀로 일일이 대응하는 식이다. 자연스레 유권자들의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는 한 전 위원장에게 쏠렸고, 254개 지역구 후보들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정작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이런 구조로 인해 한 전 위원장의 특유의 사이다 화법이 선거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시선도 있다. 한 여당 관계자는 “처음엔 야당에 밀리지 않는 한 전 위원장의 모습이 보수 지지층에 쾌감을 준 게 사실”이라면서도 “일일이 싸우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중도층과 무당층에는 피로감을 줬다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한 전 위원장이 내건 ‘야당 심판론’ 선거 전략도 도마에 올랐다. 홍 시장은 여당이 완패한 총선 바로 다음 날인 4월11일,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주된 실책으로 거론했다. 그는 “본인이 법무부 장관 1년6개월동안 하면서 못 잡았는데 사법적으로도 못 잡은 이재명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잡겠느냐”며 “정치판에 그런 것은 통하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왜 온갖 비리와 부정을 하고도 미국에서 뜨고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당초 여당 내부에서는 젊은 엘리트 이미지를 가진 한 전 위원장이 ‘낡은 영남정당’ 이미지를 극복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선거 기간 내내 그는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에 매달렸다. 거센 ‘정권심판’ 바람에 고개 숙이기보다 맞불을 놨다. 일각에서는 한 전 위원장의 ‘심판’ 메시지가 되레 야당의 ‘정권 심판’을 부각시키며,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층) 표심 공략에도 실패했다. 국민의힘은 신혼부부를 위한 저출생 대책,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 철도와 주요 고속·간선도로 지하화, 경로당 주 7일 점심 제공 등 공약을 내놨지만 효과는 없었다.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 이행 계획을 고려하지 않은 ‘남발성’ 공약이라고 비판 받았다. 유세 후반부 지지층 결집에 과도하게 집착한 점도 패착으로 꼽힌다. 네거티브 경쟁 속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민생 정책 공약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홍 시장은 “이제 70대가 넘는 노년층 지지에만 걸구(乞求)하는 정당이 미래가 있을까? ‘청년정치’를 외치면서 들어온 그 애들은 과연 그 역할을 해 왔을까?”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의 한 낙선자 측 관계자 역시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문제는 명확한 브랜딩이 없다는 점”이라며 “중수청 지지를 얻을 ‘따뜻한 보수’ 이미지도, 젊은 혁신 정당 이미지도 갖지 못했다. 오로지 심판론만 남고, 민생 정책이 없는 선거란 점에서 보수 유권자에겐 큰 비극”이라고 토로했다.
다만 이번 총선 패배의 결정적 원인은 이종섭·황상무 논란 등 ‘용산발(發) 리스크’며, 한 전 위원장이 그런 상황에서도 분투해 개헌 저지선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반박도 적지 않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번 총선 캠프에서 활동한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한동훈 전 위원장의 지원 유세 덕분에, 적지만 100석이나마 의석 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 정부에 실망하는 지역 민심이 커서 여러모로 불리했는데, 한 전 위원장 인지도와 개인기로 버텨낸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비대위원장, 선대위원장으로서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간 한 전 위원장이 총선 승리를 위해 복지부동하는 당의 체질과 낡은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동분서주한 점은 인정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창환 장안대학교 교수는 “홍 시장은 언론 공중전에 굉장히 능한 사람”이라면서 “총선 참패에 ‘용산 리스크’가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임기가 3년 남은 대통령을 보수 텃밭의 대구시장이 직접 비판하면 모양이 좋지 않다. 당장 책임을 물을 사람이 한 전 위원장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홍 시장이) 총대 메고 ‘반한동훈’을 주장하는 이유는 당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함이다. 사실상 용산과 친윤계에 쓴소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