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
북한 최고지도자의 권력은 복합적인 요소에서 기인한다. 이는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왕권신수설, 김씨 왕조, 주체사상, 그리고 교황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북한의 정치 체제는 김일성으로부터 시작된 김씨 일가의 세습 체제를 근간으로 한다. 김일성은 지난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이후 국가의 초대 지도자로서 자신의 권력을 확립했다. 그의 아들 김정일과 손자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 승계는 북한을 일종의 현대 왕조 국가로 만들었다. 이 세습 체제는 북한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충성심과 가족 중심의 권력 구조를 통해 정당화된다. 전통적인 왕권신수설과 유사하게, 지도자의 권력이 혈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계승된다는 믿음을 조장한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독특한 정치 이념으로, 개인과 국가의 자주성을 강조한다. 이 사상은 김일성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이후 김정일과 김정은에 의해 발전되었다. 주체사상은 지도자의 절대적 권위를 정당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도자는 인민의 주체적 삶을 이끌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국가 운영 전반에 걸쳐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기반은 지도자의 권력을 신성화하고, 그들의 결정이 곧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는 단순한 정치적 지도자를 넘어 신적인 존재로 숭배된다. 이는 전통적인 왕권신수설과 유사하게, 지도자의 권위가 초월적인 힘에 의해 부여된 것처럼 여겨지게 한다. 이러한 신격화는 교황과 같은 종교적 지도자와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교황이 가톨릭교회 내에서 절대적인 영적 권위를 가지듯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국가와 인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기능한다. 이는 체제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북한 사회는 철저히 통제된 정보와 교육 시스템을 통해 지도자에 대한 숭배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 매스미디어(mass media)와 예술 작품은 지도자의 업적을 찬양하며, 교육 과정에서는 그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문화적 요인은 지도자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론적으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권력은 김씨왕조 세습 체제와 주체사상을 통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그리고 문화적·사회적 요인을 통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권력 구조로서, 왕권과 신권이 통합된 절대왕정 시대의 북한식 왕권신수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