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업계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후보물질 발굴에 그쳤던 AI 적용 범위가 임상 전 주기로 확대되는 추세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제약사들이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전문 기업과 손을 잡는 등 AI 신약 개발 기술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간 국내에서 AI 기술은 주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데 사용돼 왔다. 최근 AI를 통한 신약 개발 성과가 속속 나타나면서 보다 넓은 범위의 임상 과정에서 접목되고 있다.
JW중외제약의 경우 선도적으로 AI 기술을 활용해 온 기업 중 하나다. 6년여 간 빅데이터 기반 약물 탐색 시스템 ‘주얼리’와 ‘클로버’를 통해 10여개의 혁신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AI 기반 신약 연구개발(R&D) 통합 플랫폼 ‘제이웨이브(JWave)’ 가동을 본격화했다.
제이웨이브는 500여 종의 세포주, 오가노이드, 질환별 동물 모델 유전체에 이어 4만여 개의 합성 화합물 등 방대한 생물·화학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기존 약물의 새로운 적응증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약물의 제형 등 디자인 선정 시 도움을 주고, 인체에 투여했을 때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독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예측 가능하다.
JW중외제약은 향후 후보물질 탐색과 함께 비임상 실험부터 임상 3상까지 이르는 전 주기에서 AI 플랫폼을 활용할 계획이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기존 임상시험 방식대로 하면 신약이 나오기까지 평균 10~15년이 걸린다”며 “평균 2~3조원의 막대한 투자비용이 드는 반면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AI 기술을 적용하면 개발 기간과 비용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다”며 “아직 활용 초기 단계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전 주기에 걸친 임상 과정에서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웅제약은 독자적 AI 신약 개발 시스템 ‘데이지(DAISY, Daewoong AI System)’를 오픈했다. 주요 화합물 8억종의 분자 모델을 전 처리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재료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시스템이다. 이 외에도 화학물 분자 모델 데이터베이스 플랫폼 ‘다비드’, 신약 후보물질 발굴 솔루션 ‘데이비스’를 갖추고 있다.
더불어 대웅제약은 지난 2018년 신약디스커버리센터를 개소한 뒤 AI 인력과 조직, 솔루션을 모두 자체적으로 내재화했다. 자체 플랫폼을 통해 신약 개발 성과도 빠르게 도출하고 있다. 현재 15개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 중 8개 과제에 AI를 접목했다. 대웅제약 역시 전 임상, 임상, 시판 등 신약 개발 전체 과정에서 AI 플랫폼을 적용할 방침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최적화하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일을 AI 기술로 최대 2개월까지 단축시켰다”며 “향후 임상 전 주기에 AI 기술을 반영하고, 빠른 시일 내 글로벌 제약사 수준의 연구개발 능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제약사들의 AI 기술 접근성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연합학습 기반 신약 개발 가속화 프로젝트’(K-MELLODDY, K-멜로디)는 올해 하반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이 프로젝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사업으로, 병원·제약사·연구기관의 신약 데이터를 모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대규모 AI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유럽연합(EU)의 멜로디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했으며, 오는 2028년까지 5년간 사업비 총 348억원을 투입한다.
K-멜로디사업단 관계자는 “외국처럼 신약 개발 전 주기에 AI 플랫폼을 활용하려면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을 찾아내야 하는 만큼 하나의 기업 수준에서 모이는 데이터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곳의 제약사와 병원, 연구기관 데이터를 통합하고, 신약 후보물질 발굴·임상 과정의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연구개발 비용이 부족해 AI 플랫폼을 갖추지 못했던 제약사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