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성철은 요즘 휴대전화와 거리를 둔다. 그가 ‘폰 디톡스’를 결심한 건 지난해 봄. 넷플릭스 ‘지옥’ 시리즈에 정진수 역으로 출연을 결정했을 때부터 공개 후 한 달 동안은 휴대전화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단다. 시즌 1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역할의 배턴을 이어받아서다. 이달 초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부 공개한 후 지난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선뵌 ‘지옥’ 시즌 2(이하 지옥2)는 호평과 함께 순항을 시작했다. 지난 30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성철은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감사함이 크다”며 기뻐했다.
김성철이 ‘지옥2’에 출연하기로 했을 때 주위에선 말리는 반응보다 응원과 기대가 쏟아졌다고 한다. “힘든 것에 도전하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네 마음대로 하라’고들 하더라고요. 정진수가 매력적이라 제가 어떻게 연기할까 흥미를 갖는 분도 많았어요.” 그는 정진수를 “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캐릭터”라고 했다. 정진수는 망가진 세상을 지배하는 교주다. 지옥 사자가 ‘시연’하는 것을 이용해 새진리회를 내세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디서 볼 수 없는 캐릭터에 마음이 끌린 건 당연지사다. 시간을 돌려도 정진수를 기꺼이 맡았을 거란다.
시즌 1에서 유아인의 연기를 인상 깊게 봤던 그는 뜻밖의 출연 제의에 가슴이 뛰었다. 비교는 이미 각오한 지 오래다. “더 잘하겠단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죠. 연기와 작품 모두 주관적이잖아요. 누군가는 좋아할 거고,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어차피 이건 제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단단함이 엿보였다. 연상호 감독은 현장에서 연기하는 김성철을 볼 때마다 그에게서 강한 믿음을 느꼈다고 한다. 김성철은 “연기할 때만큼은 확신을 갖고 하려 한다”면서 “이게 맞는 거라고 되뇌며 연기했다”고 돌아봤다.
새로운 정진수의 출발점은 이전 시즌이 아닌 원작 웹툰이었다. 시즌 1이 사이비 종교 지도자로서 영향력을 과시하는 정진수를 그렸다면, 새 시즌은 일찌감치 지옥행 고지를 받은 정진수의 뿌리 깊은 공포를 담았다. 김성철은 “‘지옥2’에서 정진수는 거대한 거짓말을 하기보단 속내를 드러낸다”면서 “시즌 1과의 연결성보단 정진수만을 상상했다”고 짚었다. ‘지옥2’는 첫 회부터 지옥 사자들에게 ‘시연’ 당하는 정진수를 보여준다. 이전 시즌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장면을 김성철이 그대로 이어받았다. “누군가의 기대에 충족될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을 잇던 김성철은 “시즌 2를 여는 장면인 만큼 스타트를 어떻게 끊을지에 집중했다”고 힘줘 말했다.
화살촉 군단이나 여타 등장인물과 달리 외적 특징이 없던 만큼 김성철은 정진수가 가진 극적 면모만을 내세웠다.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자의식 없는 상태에서 겪는 정진수의 혼돈과 혼란을 표현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정진수의 감정과 에너지를 담아낸 눈빛 연기에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웹툰 원작 속 삐쩍 마른 정진수를 구현하기 위해 8㎏을 감량키도 했다. “쉬운 장면이 단 하나도 없던” 모든 순간 중에서도 가장 어렵던 건 박정자(김신록)와의 마지막 대면이다. 잘해도 본전이란 우려에 김성철은 “이렇게 재미난 작품, 흥미로운 캐릭터를 해봤으니 난 손해 본 게 전혀 없다”면서 “매 작품 흥행하고 싶은 건 내 바람일 뿐이니 언제나처럼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겠다”며 씩 웃었다.
“작품을 하나씩 할 때마다 등산하는 기분이에요. 한 계단씩 올라가다 보면 가끔 내리막도 있지만 평지도 나올 테니 계속 올라가자 싶거든요. 평소에도 산을 탈 때면 정상의 경치를 기대하기보단 유산소 운동이라 생각해요. ‘지옥’도 그런 작품이지 않을까요? 대표작이나 인생작이 되고 싶단 마음은 늘 있죠. 좀 더 먼 미래를 바라본다면… ‘열심히 했고 재밌는 작품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