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연말까지 검토하겠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세대분리법)은 부모와 주거를 달리해도 ‘미혼 자녀 중 30세 미만인 사람’은 부모와 동일가구로 본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부모 부양을 실제로 받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20대 청년들은 부모 소득과 묶여 생계급여를 비롯한 LH 임대주택, 국민취업지원제도, 청년전세대출 등 각종 청년 복지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는 실정이다.
서 의원은 4년 전에도 법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했던 서 의원은 지난 2020년 보건복지부에 “20대 청년을 개별가구로 보장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선하라”며 인권위 결정문을 통해 권고했다.
그는 “민법상 성인이 되는 순간 독립적 주체로 인정하는데, 만 30세 기준은 명확한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면서 “저소득 20대 청년들은 수급자로 선정되지 않거나 지원 금액이 적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이름을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세대분리법은 20대인 장애인 청년들도 사회 안전망 밖으로 떠밀고 있다. 세대분리법은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2조에 따라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만 별도가구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 30세 미만의 경증 장애인 등에 대한 지원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서 의원도 법의 사각지대를 경험한 적 있다. 경증 발달장애인 20대 A씨의 세대분리를 도우면서다. 중증 시각장애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A씨는 세대분리 연령 기준에 걸려 독립에 실패했다. 이 문제를 놓고 부녀간 불화는 깊어졌다. 급기야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했다. ‘가족 관계 단절’을 증명하면 세대분리가 가능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구청은 세대분리가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그는 “당시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부녀가 서로 폭력을 가한 것이 인정돼야만 자립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자체에 강력하게 문제 제기했다. 경찰 신고가 몇 차례 들어가면서 가족관계 단절이 증명됐고, 결국 세대분리를 성공시켰다”고 했다.
서 의원은 이같은 복지 사각지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법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현재 30세가 되기 전 부모로부터 세대분리를 하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결혼 여부나 나이와 관계없이 실제 지원 필요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변화하는 시민들의 삶과 필요성을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겠다”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시민들과 소통하며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해나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다음은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일문일답.
―인권위 위원으로 활동하셨던 2020년 당시 20대 청년을 개별가구로 인정해야 한다는 개선 권고안에 이름을 올렸다. 권고 배경과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20대 청년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장하는 데 있어 한계가 분명해 지난 2020년 인권위 차원의 권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 20대 청년들이 개별가구로 인정되지 않아, 수급권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당사자들도 사회안전망 밖으로 밀려나는 문제가 있었다. 20대 중증장애당사자는 빈곤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부모와 한 가구로 묶여 충분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원칙적으로 미혼 자녀인 20대 청년들도 별도가구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인권위 권고에 복지부는 20대 청년부터 별도 가구 보장 범위를 확대하거나 ‘청년 주거급여 분리 지급 모델’을 생계급여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4년이 지난 뒤에도 크게 개선된 것이 없다.
“여전히 크게 개선된 것이 없어 아쉽다. 인권위가 독립적인 국가기구로 만들어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권고에는 강제성이 없는 상황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권의 관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관점에서 인권위의 권고가 실질적인 정부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 초혼 연령이 높아지고, 노동시장 진입 시기가 늦어지며, 20대 청년이 개별가구로서 보장 받기 어려워졌다. 1999년에 제정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현재 청년들의 삶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만 30세 미만이 부모로부터 세대분리를 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는 방법 밖에 없다. 결혼 여부나 나이와 관계없이 실제 지원 필요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변화하는 시민들의 삶과 필요성을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입법부의 일원인 국회의원으로서 생활보장제도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시민들과 소통하며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해 나가겠다.”
―헌법은 국민이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가 사회보장을 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생활법에서 30대 미만 청년은 개별가구로 보지 않아 정책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처럼, 현 사회보장제도가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반복되는 발달장애인 일가족 참사 등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은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복지 지원 공백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가족의 형태와 부양 기능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가구 중심이 아닌 개개인을 위한 복지서비스가 필요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뿐만 아니라 장애인, 노인, 청년, 여성, 아동 등 시민이라면 누구나 개별적인 서비스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복지 사각지대 문제에 있어 지속적으로 고민하겠다. 또 복지부와 소통하며 국민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정부의 복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현재 많은 복지 제도가 소득, 재산 등의 기준에 따라 지원을 결정한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현실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할 때가 많다. 또한 서비스 신청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신청하기 어려운 분들이 도움이 필요한 때에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이어진다.
관련 부처 간 연계 부족과 정보 공유의 미흡함도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복지 시스템의 기준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정보 접근성을 높이면서 부처 간 협력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복지 대상자를 국가가 먼저 발굴하고 지원하는 체계 역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회 입성 뒤 중점적으로 추진한 의정활동은 무엇인가. 또 향후 입법 활동 계획은?
“22대 국회에 입성한 뒤 1호 발의안은 ‘교통 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이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장애인권운동가로서 장애인연금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개정안을 발의하며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인권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인권위 정상화에도 힘쓰고 있다. 인권위 회의 공개와 후보추천위원회, 장애당사자 인권위원 포함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인권침해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위해 진정 시효 확대와 불이익 조치 처벌을 골자로 한 피해자 보호 확대법도 발의했다.
앞으로도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
집을 떠난 20대의 자립은 쉽지 않다. 대한민국에선 더 힘들다. 부모의 가정폭력, 일방적 지원 중단, 가출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난 청년들에게 국가는 법적 자립을 허락하지 않는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취업·결혼을 하지 않은 20대 청년을 독립 가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30세 이상’만 가능한 세대분리 기준은 일부 청년들을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어냈다. 쿠키뉴스 취재팀은 8월21일부터 10월31일까지 2개월간 30세 미만의 ‘독립 제약 청년’들을 직접 만났다. 빈곤 상태여도 기초생활보장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다. 큰 빚을 지거나, 노숙을 택한 청년도 있다. 세대분리법으로 복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 20대 청년의 삶을 조명하는 최초의 시도다. 11월4일부터 9편에 걸쳐 보도한다. *‘독립 제약 청년’이라는 언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