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국토교통부가 위탁한 저금리 정책대출상품을 입맛대로 운영해 서민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시정요청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은행의 ‘묻지마 거절’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1∼8월 디딤돌·버팀목 등 9개 정책대출 자산 심사 ‘적격’ 판정받은 건수는 35만 3184건이다. 그러나 은행에서 대출을 실행하지 않은 건수는 16만 181건으로 미실행률이 49%에 달했다.
바빠서, 취급 안해서…문전박대
국토부 산하 HUG에도 수탁은행과 관련한 민원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20일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HUG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수탁은행 관련 민원은 총 75건이었다. 2022년 16건, 2023년 36건, 2024년(7월 기준) 23건이다.
국토부가 선정한 주택도시기금 재수탁기관(수탁은행)은 우리은행, 국민은행, 농협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5대 시중은행과 BNK부산은행과 iM뱅크다. 이들 은행은 오는 2028년 3월31일까지 수요자 대출(구입·전월세자금 대출), 국민주택채권, 청약저축 업무를 대신한다.
은행별 민원 접수는 국민은행이 17건으로 가장 많았다. 우리은행 14건, 농협은행 9건, 신한은행 8건, 하나은행 2건, IBK기업·대구은행 각각 1건이었다. 민원 요지 별로는 은행이 상품 신청 자체를 거절했다는 내용이 40건에 달했다. 수탁은행 업무안내 미흡 19건, 수탁은행 보증취급 거절이 16건이다.
HUG에 접수된 민원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 고객은 농협은행에서 정책대출 얘기를 꺼내자마자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국민은행을 찾은 고객은 6개월 이상 거래 이력이 없고, 국민은행 통장이 없어서 상담을 받지 못했다. 청년버팀목대출을 받으려 계약서를 들고 찾은 한 청년은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에서 연달아 퇴짜를 맞았다. IBK기업은행은 전세금안심대출보증 대출 취급을 거절했다가, 고객이 게시판에 항의글을 남기자 뒤늦게 부지점장이 사과했다. 대출 요건을 충족하고도, 은행 창구 직원이 제대로 몰라 받지 못한 민원인도 있었다.
불편 사례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국토부는 오는 12월2일 신규 대출신청분부터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방안을 이달 초 발표했다. 대출 수요자 사이에서는 은행들이 이를 이유로 대출 자체를 거부한다는 토로가 속출하는 중이다. 은행들이 최근 대출 총량 관리에 들어간 것도 무관하지 않다.
일부 은행원 일탈이라는 국토부
많은 은행 영업점이 주거래은행이 아니라 대출 취급이 안된다며 고객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주택도시기금 정책대출상품 요건 중 대출취급영업점과 관련한 내용은 ‘임차대상주택이 소재한 도내 영업점 취급 원칙’ 뿐이다. 하지만 대출이 급한 고객 일부는 어쩔 수 없이 계좌 개설이나 카드 발급을 해야 했다.
은행의 ‘묻지마’ 거절은 HUG와 수탁은행 간 맺은 협약과도 어긋난다. 문진석 의원실이 입수한 HUG와 수탁은행 간 계약서에는 ‘은행재원을 이용해 대출을 실행하더라도, 대출이용 고객 편의와 대출기회가 제한되거나 축소되지 않도록 한다’고 명시돼있다. 다만 이를 지키지 않은 은행에 대한 대한 패널티 조항은 따로 없었다.
HUG는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민원이 들어오면 수탁은행에 시정 요청 하는 것에 그쳤다. 주거래 은행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 당한 민원인에게 상담사마다 “말도 안된다”, “은행 재량이라 그럴 수 있다”는 상반된 답변을 해 도움은 커녕 혼란을 가중시켰다.
국토부는 은행의 정책상품 취급 거절이 일부 행원의 일탈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9개 수탁은행에서 수십만건의 대출을 취급한다”며 “(이 정도 민원 건수는)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 은행원 개인 대응의 문제로 보인다. 일부 상식 없는 은행원이 주거래 은행이 아니라 안된다는 말을 한 것 같다”고 답했다. 사안이 심각해지면 은행 민원 건수를 수탁은행 선정에 반영하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도 덧붙였다.
HUG측은 “기금 대출에 대한 신청 급증으로 일선 은행에서 기피 현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당하게 거절하는 사례가 없도록 지도 중”이라면서 “민원 발생시 사실관계 조사 등 필요한 조치를 통해 신청인 피해를 방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진석 의원은 “주거래은행이 아니면 정책대출이 안된다며 거절하는 은행의 불성실한 자세가 아쉽다”면서 “대출 현장에서 정책대출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